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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천의 교사일기 107] 학부형과 26년만의 만남

당진시대l승인2007.06.04 00:00l(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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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생활을 비교적 오래 하다보니 제자의 자녀들이 몇 년 전부터 본교에 입학하기 시작했다. 학부형이 된 제자들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그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모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것은 그들의 모교사랑이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다.
 어제는 다리에 깁스를 한 제자의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목발을 이용하기 때문에 아이가 다 나을 때까지 차로 학교에 데려오고 집으로 데려가는 일을 제자가 한동안 반복해야 했다.
 지금은 바쁜 농사철이라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조금 늦을 때가 있을 수 있다고 했는데 어제는 무척 바쁜 일이 있었나 보다. 아이를 태우고 가면서 마음은 26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시 제자가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아 바닷가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집을 찾아 갔을 때 아버지만이 계셨었는데 당시 정확한 나이는 몰랐지만 족히 마흔은 넘었던 것으로 기억났다. 그렇다면 지금쯤 7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셨을 텐데 이제 그 옛날의 학부형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는 것이다.
 뒤에 앉아있던 제자의 아들이 지름길로 안내한다고 가는 길은 바다를 메운 끝이 보이지 않는 논뿐이었다. 그 사이로 난 시멘트 농로 길을 따라 좌회전 우회전을 수차례 한 지 20여분 만에 학생의 집에 도착했다. 녀석이 목발을 한 채 "선생님! 들어가셔서 커피한잔 하세요. 제가 끓여 드릴께요"한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디 계시는지 물었더니 부엌창문을 통해 보이는 넓은 밭에서 일하시는 두 분을 손으로 가리킨다. 녀석이 큰소리로 할머니를 부르니 밭일이 끝나셨는지 집을 향해 걸어오시는데 집안에 있을 수 없어 바깥으로 나가 인사를 올렸다. 부형님의 손을 꼭 잡고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26년 전 제가 아버님을 찾아 뵌 적이 있었지요. 제가 그때 담임교사였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큰절이라도 드려야 하는데..."하면서 말끝을 흐리니 "선생님께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하신다. 서로 눈시울을 닦아내며 그동안 흘러간 세월의 아픔을 한 순간에 녹여내는 순간이었다. 제자를 끝내 졸업시키지 못한 담임으로서의 회한과 미안한 마음이 학부형님을 만나면서 어느 정도 용서를 받은 것 같아 돌아오는 길은 더없이 가벼웠다.  

송악고 교사/ 본지 편집위원
skyhoch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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