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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기획 여성과 미래,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 ③ - 생태·공동체 편 홍성 풀무생활협동조합 강혜숙 이사

김태숙l승인2007.09.17 00:00l(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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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여성운동가
시골 농사꾼 되다
마흔살의 선택 귀농 그리고 7년
강혜숙씨가 들려주는 생태·생협이야기


“생협운동은… 공동의 힘으로 세상을 인간답게 바꾸는 일”


한국여성민우회 소비자생협 이끌다
생산자로 변신한 그녀

홍성읍을 지나 청양방면으로 조금 더 가면 풀무학교와 풀무생협으로 이름난 홍동면이다. 요즘들어 유기농이니 웰빙이니 떠들썩하지만 이 마을은 이미 20년전부터 친환경농업과 구판장운영을 통한 생협 활동이 시작된 곳이다. 1989년부터 도시와의 직거래를 통해 소비 또한 안정적으로 해결해 왔다. 이때부터 이 지역의 안전한 먹거리를 소비하며 유기농산물 생산이 좌절되지 않도록 지탱해준 소비자층이 있었으니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여성민우회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운동단체였던 여성민우회는 생협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는 우수한 유기농산물을 회원들이 공동구매함으로써 생산과 소비라는 저울의 한 축을 지난 20년간 든든하게 지탱해왔던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실무활동가를 거쳐 1990년대 중반부터 여성민우회의 소비자 생협운동을 담당해온 강혜숙(47)씨. 그녀는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거꾸로 도시에 안전한 유기농산물을 생산해 보급하는 시골 농사꾼으로 변신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비자에서 생산자로의 변신일 뿐 궁극적으로 주체적인 삶, 자신과 세상을 좀 더 인간적으로 바꾸는 변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보다 인간적인 삶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일 뿐이다.

생태적인 삶은 모두를 위해
내가 조금 불편하게 사는 일

9월 중순, 푸르게 드리워진 홍동면 논 일대를 헤매다 집앞에 마중나온 강혜숙씨를 만났다. 머리를 짧게 잘라내어 의아해 했더니 그것에도 생태적인 까닭이 있었다. 지난 20년간 화학물이 첨가된 샴푸와 세제를 일절 써오지 않은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천연상태(?)이기 때문에 이와 벼룩 같은 곤충에 쉽게 노출된다는 것.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머리를 짧게 잘라낸다고 했다. 그것을 불편해 하기는커녕 애정어린 농담으로 넘긴다. “지구상에 털이 있는 생물 가운데 곤충이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 뿐이야.”
고추를 따던 중이었다고 다시 하우스로 들어가는 그녀는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농사일을 힐 때만큼은 그저 땅 앞에 겸손하고 순박한 농군이 되는 것인지. 치열했을 20~30대 활동가, 여성운동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이 7년간 땅과 농사일에 부닥치며 닦이고 다듬어진 모습인지, 아니면 도시에서만 40년 살아온 그녀를 7년만에 온전한 농사꾼으로 만들어낸 저력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농사꾼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1500평의 밭에서 고구마, 감자, 토마토 등 10개의 유기농산물을 키우고 있다.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홍동면은 이른 저녁인데도 완전히 어둠에 묻혀 있었다. 강혜숙씨가 말했다. “곡식도 잠을 자야 건강해요. 그래서 벼가 익을 동안에는 동네 가로등까지 모두 끄는 거예요.” 먹거리가 건강해야 그것을 먹는 사람이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마흔 살의 선택 - 삶과 일과
정신적 지향의 합일점이 농사였다

그녀가 나이 마흔에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내려오기로 작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40년 가까운 도시에서의 삶은 소비적이고 소모적이고 또한 반복적이었어요. 나이를 먹어 내 삶과 일과 정신이 합일될 수 있는 그런 (충만한)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그게 바로 농사였어요. 농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생산적인 활동이에요.”
평소 관절이 약해 걸레 하나 손으로 빨기 어려워했던 그녀가 귀농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만류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무식하면 용감하다(강씨의 말)’고 농사가 생면부지였던 강씨는 더 늦기 전에 일생일대의 결단을 단행했다. 도시출신인 그녀는 여성민우회 생협운동을 하며 직거래 일로 자주 드나들었던 이곳 홍동면을 고향삼아 귀농했다. 혼자 힘으로 두 살배기 딸아이 ‘정’(9)이를 키우며 농사꾼으로 뿌리내리기까지 그녀의 말대로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런데도 한때는 밭 5천평을 경작했을 만큼 억척스럽게 일했다. 사회운동 경험과 능력과 지식이 풍부한 그녀에게 이러저러한 활동을 같이 하자는 제의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5년만 기다려 달라’고 약속했고 끝내 그 약속을 지켰다. 귀농 후 5년이 지나고 6년째로 접어든 지난해에 그녀는 진정한 농사꾼으로서, 떳떳한 생산자로서 풀무생협 이사직을 수락했다.

생협운동은 세상을 인간답게 바꾸는 일,
공동구매부터 해보세요

그녀는 풀무생협의 교육홍보위원장과 학교급식위원장으로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학교급식은 도농교류 과정에서 ‘정작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음식을 보장해 주지 않는 급식체계’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 지역생산자들이 연간 1천만원 가량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홍동초에 유기농재료를 공급하다가 지금은 생협이 노-마진(no-margin)으로 급식재료를 제공하고 있다. 강씨는 풀무생협의 궁극적 목표가 ‘지역순환적 생태농업’이라고 말했다. 석유를 비롯한 외부의 자원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의 각 농업영역들이 그 부산물들을 다른 농업의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종의 자급자족적 생태농업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생협운동에 대한 설명과 조언을 부탁했다.  
“풀무생협은 드물게 생산자 조합이지만 대개의 생협이 소비자조합이죠. 생협운동을 간단히 설명하면 주체적인 소비를 위한 운동이고 환경과 뒷세대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 소비를 하자는 운동이죠. 우리가 가정에서 소비를 결정할 때 가격과 품질, 성분, 유해성을 비교하긴 하지만 막상 생산과정에 개입할 수는 없잖아요. 생협은 바로 이 생산과정에 대해 조직적으로 의견을 제시해서 소비자가 원하는 생산이 되도록 하고 그 생산물을 조직적으로 소비해서 생산자-소비자가 모두 윈윈(Win Win)하도록 하자는 거예요. 말하자면 나의 적극적인 소비를 통해서 생산과 소비를 바꾸고 환경과 세상을 바꿔가는 것이죠.”
“지역에서 생협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해요. 소비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활동, 지역사회를 바꾸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죠. 시작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뜻이 맞는 몇사람이 모여서 공동구매하는 일부터 시작해 보세요. 그러면 차츰 길이 보일 거예요.” 

그녀의 개인사를 들었다.
“스무 살에 ‘80년 광주’가 제 삶을 바꾸었다면 마흔 살에는 귀농과 제 딸 정이가 또 한 차례 삶을 바꿔놓았어요. 20년 후요? 아마 나이 60이 되면 아프리카 같은 오지에서 농사나 교육과 같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고 싶어요.”
우리가 단호하게 행동하는 순간 신(神)도 우리와 함께 움직여 준다고 괴테는 말했다. 그녀의 꿈은 꼭 이루어질 것이다.

 
강혜숙씨가 걸어온 길

- 1961년   
대구 출생
- 1981년
경북대 중퇴
- 1985년
  여성운동에 입문
- 1992년~2000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실무활동
한국여성민우회 생협활동
- 2000년
홍성군 홍동면으로 귀농
- 2006년
풀무생협 이사 및
교육홍보위원장
급식위원장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김태숙  tskim@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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