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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전설을 찾아서 ②]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 배 바위 - '늙은 목공과 곡식이 함께 잠들어 있는 곳’

최운연l승인2007.09.24 00:00l(6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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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오랜 전부터 각 마을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설이 있다. 우물에 얽힌 이야기나 오래된 나무, 바위에 얽힌 사연들, 이런 이야기들이 이제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또 전설이나 설화를 담고 있는 향토문화자원들이 그저 개발의 대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본지는 이번 기획취재를 통해 마을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좀 더 우리 지역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전내내 그칠 줄을 몰랐다. 정미면 수당리 마을 입구에는 해바라기가 길을 따라 피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씨에 해바라기들은 고개를 떨구며 비를 피하고 있는 듯 했다.
은봉산에 둘러 쌓여 있는 정미면 수당리. 비가 내리는 날씨 탓인지 처음 가본 수당리는 차분한 느낌의 마을이었다. 마을 길가 곳곳엔 꽃들이 피어 있었고 집들은 예쁘게 단장이 되어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인수정’이라는 간판을 단 마을 회관이 반겼다. 수당리의 한학자가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어질게 살아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마을주민들과 함께 제초작업을 했을 것이라는 수당리 정제훈 이장은 수당리에서 대대로 살아온 터줏대감이다.
정 이장과 함께 안국사지 배바위를 찾았다.
안국사지에 오르는 길옆으로 보이는 집들과 마을 풍경은 오염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안국사지
안국사지에 오르면 맨 처음 반기는 것이 작은 개울이다. 비가 내리고 있는 탓에 개울에는 빗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안국사지는 천여년 전 고찰이었던 안국사가 자리 잡았던 절터이다. 확실히 전해오는 기록은 없으나 백제 말엽에 창건되었고 한때는 수백명이 수도하던 큰절이었다고 전해지나 확실치 않다. 다만 고려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진군은 이 안국사지 발굴을 위해 지난 2004년 충청남도역사문화원에 의뢰해 발굴조사를 실시했으며 1차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안국사지에 불상 보호각과 부속관리사, 조경공원 등을 복원할 계획이다.
1963년 보물 100호로 지정된 안국사지 삼존석불은 고려말경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5m 높이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상이 놓여있다.
특히 지난 2004년의 시굴조사에서 땅에 묻혀 있던 ‘발’이 발견됐는데 이와 같이 ‘발’을 가진 불상은 전국에서도 안국사지 석불이 거의 유일하다.
석불 밑에는 보물 102호인 안국사지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 말엽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탑은 탑신에 불상 1구씩을 양각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매향비가 암각되어 있는 배바위가 있다.

 매향비를 품은 ‘배바위’
안국사지에는 ‘배바위’ 혹은 ‘고래바위’라고 부르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얼핏 보더라도 그 크기는 사람 수십명이 둘러야 할 정도로 크다. 가로로 길게 누워 있는 모양이 흡사 배와 같거나 고래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배바위에는 ‘미륵매향비’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도 두 개의 매향비가 새겨져 있다. 국내 4곳 북한 2곳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연대는 고려말(1310년)로 추정되며 유일하게 매향비가 2개나 새겨져 있다. 매향비란 매향의식을 행하고 이 사실을 기록한 돌을 말하며 돌을 다듬어서 세우거나 자연석에 그대로 암각하기도 한다.
정제훈 이장은 “매년 사월초팔일에 배바위에 올라 보존불상 머리에 돌을 던져 올려 놓으면 아들을 낳는다 해서 보존불상 머리 위에 수많은 돌들이 얹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배바위에는 ‘경술시월일, 염솔서촌출유, 목공합매, 경오이월일, 여미북천구, 포동제매향, 일구화주연, 결웅향도’라는 글이 새겨져있다.
이것을 풀이하면 ‘경술년 시월 서쪽의 염솔마을에 나다니던 목공이 이곳에 묻혔노라.’ ‘경오년 이월 여미 북쪽 마을 입구의 동쪽갯가에 결웅스님의 향을 삼가 묻고 한 언덕인 아미타불 고을 앞에 향도일동이 비석을 세워 표하노라’라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초엽 바닷가에 목공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가씨가 중국에서 큰 난리가 나자 배를 타고 탈출해 표류하던 중 서산 땅 수당리 앞바다에서 지나가는 어부에게 발견되어 극진한 간호를 받고 회복했다.
어느날 어부의 아내가 한숨을 쉬며 배 한척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자 두달 후 가씨는 이들 부부에게 배를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목공이 만든 배는 튼튼하고 속력이 빨랐다.
전국에 소문이 퍼지자 배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쇄도했고 목공은 늙을 때까지 돈을 많이 벌어 모두 곡식으로 바꾸어 그가 일하는 수당리 안국산 바위 구멍에 첩첩이 쌓았다. 
그런데 어느날 서해바다 깊숙이 들어가서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배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가씨는 배를 크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안국산 곡식가마 곁에서 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빗방울이 떨어져 곡식을 쌓은 굴을 거적으로 가리려는데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져 만들던 배는 배모양의 바위로 변해 가씨를 덮쳐 가씨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가씨가 쌓아놓은 곡식은 전 백성이 하루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곡식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하나의 보물 ‘침향목’
배바위 침향목이 1975년 발견돼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침향목은 배바위에 기록된 ‘매향비문’과 일치되는 것으로 현재 논산군 광석면 신당리의 광석 중앙교회 최병남 목사가 소장하고 있다. 최목사는 친구인 주원장 목사로부터 이를 매입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침향목이 발견된 것은 1975년 4월20일경 정미면 승산리 구티라는 곳으로 주목사가 정미면 천의교회에서 봉직하고 있을 무렵이다.
구티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으로 침향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해야한다는 옛 이론이 전해내려져 온다고 한다.
배바위 침향목의 수령이 약 1300~1500년 정도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2m에 둘레 2m 가량이다. 특히 국내에 매향비가 총 6곳이 있는데 침향목이 발견된 것은 배바위 침향목이 처음이라고 한다.
안국사지 원상 주지스님은 “매향비가 처음으로 발견된 것도 놀랍지만 거의 훼손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된 채 발견된 것이어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최운연  uychoi@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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