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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 입력 2007.10.08 00:00
  • 호수 681

지역의 전설을 찾아서 ③ - 면천면 성하리 ‘색시 골망’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로 시작된 ‘색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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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시들이 밟으면 죽는다”

 편집자 주
 오랜 전부터 각 마을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설이 있다. 우물에 얽힌 이야기나 오래된 나무, 바위에 얽힌 사연들, 이런 이야기들이 이제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또 전설이나 설화를 담고 있는 향토문화자원들이 그저 개발의 대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본지는 이번 기획취재를 통해 마을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좀 더 우리 지역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어린 시절 잠이 오지 않으면 으레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했다. 특히 귀신 이야기는 무서우면서도 좋아했던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귀신하면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흰 소복 차림의 처녀 귀신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면천면 성하리와 동학동 경계에 위치한 색시골망(‘골망’ 골짜기의 충청남도 방언). 이곳에도 한이 서려 있는 처녀 귀신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면천면 소재지에서 영탑사 방향으로 가다보면 성하리가 나온다. 성하리에서 동학동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길 양옆으로 야트막한 산이 있는데 이곳을 색시골망이라고 한다.
70평생을 성하리에서 살아온 박노식씨가 옛 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색시골망의 유래를 전해줬다.
옛날 어느 청춘남녀가 서로 사랑했으나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사이였다고 한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이들은 함께 죽기 위해 성하리 색시골망을 찾았다. 색시골망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았던 곳인데 이곳에서 두 남녀는 목을 메고 죽었다. 이들이 죽은 이후에 색시골망으로 불렸다고 박노식씨는 전했다. 박씨는 또 이들이 죽은 자리에 바위가 생겼는데 이상하게도 이 바위에서 물이 흘렀다고 한다. 바위에서 흐르는 물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목을 메고 죽은 처녀가 슬퍼서 흘리는 눈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씨에 따르면 자신이 어렸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바위를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또 박씨는 “어렸을 때에는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서너사람은 이곳을 지나갔다”며 “햇빛이 잘 들지 않고 처녀 귀신의 이야기가 내려오는 이곳을 혼자서는 못지나갔다”고 했다. 
한번은 이웃마을에 사는 나이 많은 노인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쓰러져 죽은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진문화원에서 1993년 펴낸 당나루의 맥락 ‘傳說’ 편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옛날 전라도 지방에 사는 최영감의 둘째 딸이 면천면 동학동으로 시집을 오게 됐다. 신랑집을 가려면 색시들이 모두 죽곤한다고 전해지는 색시골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최영감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최영감은 마을에서 가장 힘센 장사와 칼을 잘 쓰는 무사를 모아 많은 상금을 약속하며 딸을 호위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장사들과 신부는 마침내 색시골에 도착했는데 이상하게도 맑은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고 날이 어두워지며 천둥 번개와 함께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모두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먼 길을 오느라 모두들 지쳐 잠이 들었고 날이 밝아 장사들이 일어나 보니 가마 속의 신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마 먼저 죽은 처녀들이 데리고 갔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박노식 면천면 성하리
“마음만은 30대여”

72세의 박노식씨는 성하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랐다. 몸이 좋지 않아 천안의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박씨는 마음만은 삼사십대라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미신을 믿지 않지만 어린 시절에는 색시골을 지나가려면 무서웠지. 그래서 일부러 큰소리 내면서 지나가곤 했어.”
박씨는 “어느 무당이 주문을 외우면서 지나가면 귀신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주문을 외우고 다니기까지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동무들이 다 떠나서 조금은 아쉽다는 박씨는 욕심 없이 남은 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마을 인근에 고속도로건설로 예전의 마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아쉬워했다.

 인근에 가볼만한 곳 | 영탑사
영탑사는 상왕산(210m) 동쪽 기슭에 있으며 신라 말엽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후 고려 충렬왕 때 보조국사가 중건했다고 전한다. 본전에는 보물 제 409호인 비로자나금동삼존불상이 있고 절 주위에는 거대한 괴목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7층 석탑은 자연 암석 위에 쌓아 올린 독특한 것이다. 영탑사 범종에는 ‘1760년 2월 가야사 법당 금종을 백근의 금을 녹여 만든다’는 기록이 있다. 가야사는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 이구 (李球. 1788-1836)의 묘를 쓰기 위해 불태운 절로 어떻게 해서 그 절의 금종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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