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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 입력 2007.10.29 00:00
  • 호수 684

[지역의 전설을 찾아서 ⑥ - 석문면 장고항리 ‘노적봉 동굴’] 소년이 7년간 공부하던 ‘바위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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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적봉 동굴의 모습

 편집자 주
 오랜 전부터 각 마을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설이 있다. 우물에 얽힌 이야기나 오래된 나무, 바위에 얽힌 사연들, 이런 이야기들이 이제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또 전설이나 설화를 담고 있는 향토문화자원들이 그저 개발의 대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본지는 이번 기획취재를 통해 마을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좀 더 우리 지역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왜적을 물리치던 노적봉 바위
 석문면 장고항리에 가면 ‘노적봉’이라는 돌출된 바위가 있다. 과거 어항으로 유명하고 최근에는 실치가 많이 나오는 이 지역은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종종 쳐들어왔었다고 한다. 위급할 때 바위산에 가마니를 쌓아 마치 군량미가 많아 군사가 많은 것처럼 위장해 왜적을 물리쳤는데 그 모습이 노적가지처럼 보여서 노적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바위산 아래에 있는 작은 동굴에 전설 하나가 전해지고 있다. 300여년전 나라에 정변이 크게 일어나 많은 사람이 죽고 귀양살이 간다고 시끄러울 때 이곳에 일곱 살 남짓한 어린 동자가 책을 등에 메고 동굴에 찾아와서 자리를 정하고 살게 됐다. 겉모습은 지체 높은 집안의 귀공자 같으나 마을을 돌아다니며 밥을 얻어먹으면서 책만 읽었다. 그는 자랄수록 거지행각을 했다. 마을사람들이 거지가 왜 책을 읽냐고 놀리면 ‘까만 것은 글씨요, 누런 것은 종이요’하고 답했다.
 어느 날 마을 원님이 경치가 아름답다는 노적봉을 찾아와 풍류를 즐겼다. 그때 소년은 굴에서 나와 원님이 먹다 버린 음식찌꺼기를 주워 먹기도 하고 원님 가까이 가서 물끄러미 쳐다봐 원님을 놀래켰다.
 소년이 굴속에서 글을 읽은 지 7년째 되는 14살 때 여장을 챙겨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에 급제했다. 과거시험에는 합격했지만 그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절간을 돌아다니면서 머리를 식혔다. 어느 날 자기가 공부했던 굴속으로 돌아왔다. 굴 안에는 언젠가 만났던 원님을 다시 만나게 됐다. 원님은 소년의 장원급제를 축하하고 자신이 소년의 아버지의 서자라며 자신이 소년에게 책을 줬다고 말했다. 원님은 또 소년에게 아버지에 대한 노여움은 풀고 나라를 위해 일해 달라고 당부했다.
 어린 나이로 거지가 되어도 공부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소년은 벼슬길에 올라 후에 재상까지 올랐고 그 원님도 높은 자리까지 지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노적봉 동굴을 신성한 곳으로 여겨서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요한 어촌마을 장고항
 굽이굽이를 넘어 도착한 석문면 장고항리에는 작은 어촌마을이다. 지금은 장고항 항의 방파제 축조공사가 한창이기 때문에 항까지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장고항 방파제가 시작하는 곳에 위치한 노적봉은 누르스름하고 거친 바위이다. 노적봉에서 바닷가 쪽으로 들어가면 아늑해 보이는 동굴이 한 눈에 보인다. 장고항 바닷가를 따라 회를 직접 잡아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기도 하고 제철 수산물을 살 수 있다. 요즘에는 고다리와 꼴뚜기가 올라온다. 실치마을로 알려진 장고항에서는 4월말에 장고항실치축제가 열린다. 축제에서는 뱅어포 만들기, 어선탑승 등을 체험할 수 있으며 제철 맞은 실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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