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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지역문화공간 ⑸] 독일 베를린

도심 속에 예술 & 생태 공동체를 일구다 우파 파브릭
자본주의적 소비를 버리고 문화와 생태를 얻는 사람들
베를린 장벽이 가로놓이면서 버려졌던 영화제작소, 그곳에 자유와 예술과 생태를 숨쉬는 대안마을
김태숙l승인2007.12.03 00:00l(6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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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쭉 뻗은 아스팔트와 드높은 콘크리트 건물들, 씽씽 달리는 자동차. 여느 도심과 다름없는 베를린 시의 풍경 틈바구니에 녹색 나무울타리를 친 야트막한 마을 하나가 앉아있다. 언뜻 보면 도심 속 미개발지 같고 다시 보면 도심 속의 오아시스 같은, 그곳은 바로 예술촌이자 문화생태공동체로 널리 알려진 우파파브릭(Ufa Fabrik)이다. 베를린 시내 지하철에서 내리면 불과 3분 거리, 도시의 평범한 한 블럭 안으로 들어섰을 뿐인데 ‘우파파브릭’이라는 간판이 붙은 정문안으로 한 발짝만 들어서면... 결코 도심 속에 있을 법하지 않은 촌스러운 세계가 펼쳐져있다.
 목가적인 시골정취를 물씬 풍기는 그곳은 대번에 들어서는 사람의 긴장을 풀어 편안하게 해준다. 줄맞춰 심은 흔적이 없는 자연스러운 나무들과 그 사이사이에 소박하게 앉아있는 7동의 1층 혹은 2층짜리 건물들. 마을 밑을 흐르고 있는 물소리와 작은 연못을 따라 뒤뚱뒤뚱 몰려다니는 오리떼, 동물농장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게다가 녹색 지붕마다 심어져 치렁치렁 건물벽에 드리운 식물들이 이곳의 풍경이다. 도심 속에 세워진 시골왕국이 애써 가꾼 표시없이 그저 심드렁하고 자연스러운 것은 그만큼 이곳의 역사가 길기 때문이고 생태적인 삶이 이제 이곳에서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버려진 것들로 시작된 새로운 예술
 회색 콘크리트 바다 위에 떠있는 녹색섬 우파파브릭. 그곳은 회색 자본주의식 사막 속에 깊숙이 숨겨진 녹색 오아시스라 불러도 좋은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인 1979년, 새로운 세상과 이상을 꿈꾸는 청년들과 예술인들이 과거 영화제작소였던 이곳에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우파파브릭의 역사는 시작된다. 당초 이곳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최고 수준의 스타들로 이름났던 UFA(우파:유니버설영화배우협회) 영화사가 있던 곳이다. 그런데 1961년 동서독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이 이곳을 관통함으로써 현상소는 동베를린, 촬영소는 서베를린에 있게 되면서 두 기관은 공동작업을 하지 못한 채 결국 영화사는 버려진 공간이 되었다. 통일 이전 서독 정부는 동독 한가운데 외따로 떨어진 서베를린 청년들에 한해 군복무를 면제해 줬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1965년경부터 서독 곳곳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청년 예술가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예술적 영감이 살아있는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꿈이었다. 
 우파파브릭 탄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78년 6주 동안 이곳에서 이루어진 페스티벌이었다. 이들은 이곳에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것들을 재료로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하고 음악공연을 하였으며 동양문화와 아시아의 명상법을 배우는가 하면 에너지 분야에선 세계 최초의 태양열 목욕탕을 개발하기도 했고 물을 내리지 않는 자연발효 화장실도 개발했다. 그야말로 생활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양한 새로운 양식들이 실험되었다. 페스티벌은 성공적이었다. 이들은 일시적인 페스티벌이 아니라 아예 이곳에 거주하면서 공동작업을 할 것을 제안했다. 마침내 1979년 6월9일 우파파브릭이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이들이 내건 모토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라, 그리고 삶을 바꾸라(To think another way and change life)’. 그것이었다.  

양파를 어떻게 썰어야 생태적인가
 처음 100여명이 이주했지만 리모델링된 공간이 많지 않아 수개월 후 30~40명이 중도하차했다. 남은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까페나 빵집 등 각자의 역할을 찾기 시작했고 재정자립을 위해 이러한 길드가 형성되면서 지금의 우파파브릭은 자리를 잡아나갔다. 그러나 모든 활동의 밑바닥에는 파괴적, 인공적인 것을 배제하고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이며 생태적인 것을 고집하는 공동의 원칙이 있었다. 대안적 삶과 공동체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세심하게 이루어졌고 언제나 토론과 합의를 원칙으로 진행되었다.
 “양파를 어느 쪽으로 써는 것이 더 많은 양을 얻을 수 있고 환경친화적인지에 대한 토론도 있었습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단계적인 식단들도 준비되었구요. 채식은 단순히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소비를 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죠.”
 이곳을 소개한 우파파브릭 안내자의 말이다.

프리스쿨과 문화공연, 그리고 주민교육
 이곳에 있는 공간들은 크게 국제문화센터와 자립센터로 나뉘고 용도에 따라 연극공연장, 야외무대, 스튜디오와 댄스교습소, 체육관, 카페, 레스토랑, 유기농 식품점, 50명가량이 묵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된다. 이곳의 명물은 어린이서커스학교와 ‘자유학교’.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배운 서커스를 야외무대에서 선보이며 예술적 감성을 키우는 한편 성적표가 없는 프리스쿨(FreeSchool)에서 자유롭게 배운다. 6~12세의 어린이가 다니는 자유학교는 학생 5명당 교사가 1명. 7년간 불법이었으나 지금은 정규학교로 인정받아 시에서 재정의 절반을 지원받고 있으며 이곳을 거쳐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이곳에서 만드는 유기농 빵도 인기가 높아 하루 2000개가 넘게 베를린 전역에서 판매된다. 한편 브라질, 아프리카 등 세계의 공연을 선보이는 공연장에는 11월초 한국의 사물놀이 <난장>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자립센터에서는 사소한 규칙의 문제에서부터 건강, 주거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생활상의 모든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한다.
 문화활동뿐 아니라 지역연계 프로그램도 연중 활발하다. 다양한 워크샵으로 매주 1천명 가량의 주민이 다녀가며 웅덩이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실험하는 ‘하펜 프로젝트’를 진행, 지역주민의 직접 활용을 유도하기도 한다. 주민들이 여는 벼룩시장과 주민대상의 상담, 어린이와 무의탁노인이 함께하는 1-3세대 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교류와 우호적인 평가 덕에 이사오는 젊은이들도 늘고있다.
 우파파브릭은 이제 연간 25만에서 30만명이 방문하는 세계의 명물이 되었다. 물론 구성원들이 각자의 생계와 공동체활동, 취미예술활동을 위해 세가지의 일을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창의적인 생각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더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김태숙  tskim@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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