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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천의 교사일기 133] 1점 때문에 눈물짓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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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고3 수험생들은 수능 성적표를 받고 무척 황당해했을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수리 가형문제에서 3점짜리 하나를 틀려 2등급이 되는 바람에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만점을 맞았지만 유독 쉽게 출제되었다는 수리 가형 문제에서 한 문제 실수 때문에 서울대 의대진학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았다.
 오히려 다른 영역에서는 그보다 못한 점수를 맞고도 같은 등급을 유지한 학생이 수학에서 2점짜리를 틀려 1등급을 맞아 총점에선 뒤졌지만 모든 영역에서 1등급을 맞는 제도가 현행 등급제이다. 이러한 사례는 현행 등급제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또한 등급을 9등급으로 분류함으로 해서 같은 등급간에도 점수의 차이가 심하며 학교는 학교대로 수능 성적표에 등급만 표시되어 있어 학생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속해 있는 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어 진학지도에 애를 태우고 있다. 그래서 등급을 보다 세분화하자는 이야기와 등급제 이전의 제도, 즉 모든 영역을 합산해서 표준편차 백분위로 성적을 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런 저런 정책을 동원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성공한 것은 없다. 70년대 고교평준화 정책 이후 학생들의 학력은 후퇴했고 80년초 교복 자율화 이후에는 아이들의 복장 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90년대부터 현재까지 학생들에 대한 인권 신장 때문에 교권의 추락이 불가피해졌고 체력장을 없앤 결과 아이들의 체력은 불어나는 체구에 턱없이 모자라 어린 나이에 성인병에 걸리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소신과 원칙 없는 교육행정은 이제 그만 멈춰져야 한다. 한번 세워진 정책에 일관성이 있어야 신뢰가 따르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철학과 소신은 분명해야 한다. 과거의 것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아이들이 이제 더 이상 실험의 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또한 해외로 유학 갈 수 없는 서민들의 자녀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그런 좋은 교육이 있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1점에 눈물짓는 그런 정책은 이제 사라졌으면 좋겠다. 
본지 편집위원 / 송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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