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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의 전설을 찾아서 ① ‘선녀골과 선녀바위’ 대호지면 적서리] 삼신할머니의 공기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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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오래 전부터 각 마을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설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물에 얽힌 이야기, 오래된 나무나 바위에 얽힌 사연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 현대인들에게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전설이나 설화를 담고 있는 향토문화자원들이 더 이상 설화의 대상이 아닌 그저 개발의 대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본지는 지난 8회에 걸친 ‘우리 지역의 전설’ 1차 연재에 이어 제2차 기획취재를 통해 지역 향토문화의 보존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충절과 풍요의 고장 적서리(赤鼠里)
대호지면 서북부쪽에 위치한 적서리는 대호지면의 가장 끝자락에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가면 길가에 아담한 집들과 도성초등학교가 모습을 보인다. 당진읍에서 정미면을 지나 대호지면사무소에서도 한참을 들어가니 적서리를 알리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적서리는 대부분의 지세가 평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북쪽에 수구지들이 펼쳐져 있고 동쪽에는 한다리골과 지미재골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로 적서, 돌개, 선녀굴마을 등이 있는데 지금은 이곳을 통칭해 적서리라 한다. 적서리는 ‘붉은 쥐가 밭에 내리는 형국’이라 해서 ‘붉쥐’ 또는 ‘붉은쥐’라고 불리다가 후에 ‘적서’리로 개칭되었다.
적서리에는 현재 약 3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중 65세 이상이 115명이 될 정도로 고령인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대호만이 막히기 전에는 어업이나 염전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았으나 간척지 조성이후 드넓은 농지를 보유한 지역이 됐다.
문화재로는 남이흥장군 묘일원(충남기념물 52), 차전로 영정(충남향토유적 2) 등이 있다.

삼신할머니의 공기돌 선녀바위
도성초등학교에서 적서리 방향으로 100여미터를 내려가면 우측으로 큰 길 바로 옆에 둘레 1.5미터 크기의 큰 바위가 있다. 바로 선녀바위다. 선녀바위가 있는 이곳을 선녀골이라고 부른다. 마을주민들은 3년전까지만 해도 칠월칠석날 선녀바위에서 마을주민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는 지냈다.
하지만 이제는 제를 지내지 않는다. 시대적 흐름뿐만 아니라 마을주민 대부분이 기독교인으로 종교적인 영향때문이다.
선녀바위는 지금의 것보다 컸고 위치도 이 자리가 아니었다. 도로 폭을 확장하면서 길옆에 있던 선녀바위를 옮기기 위해 그 것을 깨뜨려야 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인가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고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칠월칠석날 선녀바위에 제를 지내게 됐다고 한다.
선녀바위에는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이 큰 바위가 바로 삼신할머니들의 공기돌이었다는 것이다. 삼신할머니들은 해마다 정초에 모여 공기놀이를 했는데 그중 제일 젊은 삼신 할머니가 실수로 공기돌 하나를 잃어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공기돌은 산신령의 하사품으로 그것을 잃어버린 것을 산신령이 알게되면 노여워 할 것을 우려해 삼신할머니는 공기돌을 찾기 시작했다. 며칠을 찾던 삼신할머니는 결국 이곳 선녀골까지 오게 되었고 마침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던 선녀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선녀가 이를 거절하자 삼신할머니는 화가 나 선녀가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사라져 버렸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는 삼신할머니가 잃어버린 공기돌에 앉아서 하늘나라를 그리며 살다가 끝내 죽었다 하는데 그래서 이 바위가 선녀바위다.

대호대교 앞에 서다
도성초등학교 근처 적서리를 알리는 표지석 앞에서 큰길을 따라 10여분을 더 들어가자 6월 개통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대호대교가 눈앞에 펼쳐졌다.
대호대교는 고대면 당진포2리 일명 해창과 대호지면 적서리를 잇는 다리다. 대호대교가 완공이 되면 석문이나 도비도, 장고항까지 걸리는 시간은 30여분 내외가 될 것이다. 적서리에서 바라본 대호대교 맞은편에는 해창이 손에 닿을 듯 지척이다.
 적서리 주민들은 도비도나 석문의 바닷가로 바지락을 캐러 가기 위해 정미면을 지나 고대면으로 돌아 석문으로 가야했다. 하지만 대호대교가 완공된다면 바로 해창을 통해 석문으로 갈수 있어 먼길을 돌아가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됐다.
또 당진군의 가장 낙후되고 오지라는 불명예도 씻을 수 있게 됐다. 요즘 적서리는 대호대교로 인해 지가도 많이 오르고 곳곳에서 집을 새로 짓거나 공장터를 닦고 있다.
선녀바위에 대한 기억은 그와 함께 더불어 아스라이 멀어지고 있었다.

[적서리에서 만난 노부부] 봄볕 아래 민들레 캐는 노부부

대호대교 아래 넓은 대호만이 바라다 보이는 강변뚝에서 따스한 봄볕 맞으며 민들레를 캐고 있는 백종갑(69)·차광희(70) 노부부를 만났다.
백씨 부부는 근처 논을 오가며 틈틈이 길가에 자라고 있는 민들레를 뜯고 있었다.
“요즘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민들레 1관(4kg)에 많게는 만원을 받을 수 있구먼. 바뻐지기 전에 놀면 뭐 헌데. 용돈벌이라두 해야지”
차씨는 봄철에 나는 민들레가 입맛과 건강을 챙기는데 좋다며 민들레를 삶아 먹거나 양념에 묻혀 먹으면 좋다고 했다.
차광희씨는 이곳 적서리에서 나고 자랐다. 백씨와 결혼하면서 출가했다가 다시 적서리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5남매를 두었다는 백씨 부부는 막내 아들만 결혼하면 더할 나위 없다고 한다.
지난 2002년까지 적서리 이장을 맡았던 백씨는 ‘요즘 당진읍내는 어떠하더냐’고 물었다.
“당진이 시승격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무리하게 추진한 것 같어. 그러니까 탈이 나지. 세상은 순리대로 가야허는 건디”
연일 방송되고 있는 당진군 위장전입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다. 백씨는 또 농촌현실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 옛날보다 먹고사는데 부족하지 않지만 농촌이 고령화 되어서 일손이 부족하고 영농자재값이 많이 올라 농민들만 살기 힘들어. 노인네들이 고작 땅 몇마지기 농사지으면서 이거 빼고 저거 빼면 남는게 없으니 말여. 어떻게 살라는 건지...”
백씨는 적서리의 경우 65세 이상 인구가 115명이나 된다고 했다.
적서리에서는 올해부터 영농회사에 농지를 위탁해 관리하게 한다고 했다. 임대해줘 임대료를 받는 것보다 수익이 많다는 것이 백씨의 설명이다.
백씨는 나라의 대통령이 농민들 어렵지 않게 나라를 잘 이끌어 줬으면 한다며 다시 민들레를 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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