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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이 보던 안 보던 자신의 양심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람들이고 이런 행동들이 남들에게 감동을 준다. 요즘 새벽시간에 일어나 시내를 지나는 일이 많아졌다. 무작정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차량을 보게 되면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깜깜한 새벽에 그냥 내달려도 되겠건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다스리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삶에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조금 일찍 출발하면 질서를 지키기가 쉽다. 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조급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이 무색하게 빨간불인데도 쌩하고 지나는 차량들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든다. “참으로 바쁜 삶을 사는 사람들이구나!”하는 생각이...
 학교에서도 기초질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교정 안 나뭇가지 사이나 복도와 학급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면 학생들의 의식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쓰레기를 버린 학생이 문제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자기가 버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주우려 하지 않는 학생들 또한 주인의식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교실을 각자 나의 방이라 생각하면 어느 누구라도 휴지 한 장 줍는 것이 그리 어렵지 많은 아닌 것이다.
 얼마 전 아침 교실이 깨끗한 것을 보고 주번을 칭찬했더니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주번이 청소한 것이 아니라 아무개가 매일 청소를 한다고 했다. 이름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심성이 바른 학생이었던 것이다. 그 학생에게서 나는 희망을 보았었다.
 기본에 충실하려는 마음가짐은 학교의 공부와 그 결과물인 성적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예외가 없는 바는 아니지만 기본이 삐뚤어진 학생이 공부에만 몰두해 사회인으로 성공한다면 그 또한 사회적 불행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공부가 될 것이고 공공에 해를 끼칠 수 있음이다. 그래서 학교의 공부는 인성과 학력이라는 두개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본지 편집위원 / 송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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