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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8.05.05 00:00
  • 호수 709

[신평면 선진정공 문화재훼손 현장취재] 건설현장 문화재훼손 “올것이 온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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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개발수요와 허술한 문화재 보호 환경 ‘상호충돌’ 결과 사업주에 문화재보호법위반혐의, ‘조사기간중 공사중지명령’ 문화재청, 사건다음날 ‘조사기간단축ㆍ인력보강’방안 내놔

▲ 고려시대 석관묘가 있던 자리로 추정돼 발굴작업이 진행되던 현장이 흙더미에 덮여있다.

 지난달 29일 신평면 한정리에 있는 주식회사 선진정공(대표 박성수)의 당진공장 건설현장에서 이 회사 건설 중장비 한대가 문화재발굴작업 현장을 덮쳐 고려시대 고분 5기를 훼손한 사건이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이 ‘문화재조사절차를 단축하고 부족한 조사인력을 확충하겠다’는 내용의 문화재조사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기 하루 전날이어서 여러모로 이 사건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문화재청은 사업주를 문화재보호법 위반혐의로 고발조치하는 등 강경대응한다는 입장이다. 회사측은 지난 5월1일자로 발굴작업중인 반경 260㎡에 대해 추가발굴작업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공사를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추가발굴은 1주일이나 열흘 가량 걸릴 것으로 군 관계부서 공무원은 내다봤다.
 넘치는 개발과 건설수요, 문화재보호에 대한 낮은 국민인식과 비체계적인 제도가 충돌해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 군내 한 전문학예사는 “어느 한가지, 어느 한쪽만을 일방적으로 탓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면서도 사회가 변화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단순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 앞뒤로 연달아 일어난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이번 문제를 불러일으킨 제반 환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총체적 결과이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노출된 많은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이 나올 수 있었던 촉매제이기도 했다”고 진단했다.

이 사건을 전후해 진행된 사실들을 재구성해 보았다.               

3월 시작한 지표조사, 인력부족으로 중단
 4월29일. 이날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기관인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원장 변평섭) 소속 연구위원들이 한동안 중단했던 선진정공의 공장신축부지에 대한 문화재 발굴조사에 다시 착수했다. 이들은 지난 3월12일부터 이 일대에 대한 표본조사와 시굴조사를 이미 진행한 상태였다. 3월12일부터 4월5일까지 진행된 조사 결과 연구원측은 ‘돌무덤으로 추정되는 문화재를 발견, 추가발굴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추가발굴조사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지표조사를 담당했던 연구원이 다른 일정 때문에 추가발굴작업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지표조사 기관은 전국에 141개, 발굴기관은 72개에 이르지만 경기, 충청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넘치는 개발수요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조사중이던 연구원도 이미 짜여진 다른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20일이 넘는, 긴 공백을 거친 이날에야 연구원은 이곳에서 다시 발굴작업을 시작하게 됐던 것이다. 이곳에 고려시대 고분인 석관묘 5기가 매장되어 있다는 시굴결과에 따라 위원들은 이날부터 호미와 붓으로 조심조심 발굴작업을 시작했다. 일단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되면 작업은 이처럼 섬세하고 세밀한 단계로 돌입한다.

공사 늦어 수출계약 위험, 불안한 회사
 그런데 이날 회사의 입장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공사면적이 3만㎡ 이상인 경우 공사에 앞서 문화재 지표조사를 해야 한다’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청에 발굴허가신청을 내고 시굴조사에 들어간 지 이날까지 벌써 한달 보름째. 더구나 4월5일 이후 회사측은 다른 발굴조사기관도 찾지못해 결국 한달 가까이 거의 공사중지상태였다.
 인천시 서구에서 반도체장비 부품을 제조해온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당진에 새 부지를 마련, 공장건설을 추진해 왔다. 이 회사는 미국 AKT사와 5백억원의 수출계약을 체결한 상태여서 내년초로 예정된 납품기일을 맞추려면 늦어도 10월까지 공장건립을 완료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회사의 사정은 지난 26일 경제신문을 통해 처음 언론에 공개됐다. 보도에 따르면 이 회사의 한 간부는 “미국 AKT사측에서 5월말에 현지를 와보고 진척이 없을 경우 계약을 취소하자는 말까지 했다”며 “4월초 시굴조사가 끝난 뒤 바로 발굴작업에 들어갔더라면 벌써 작업을 끝내고 착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회사의 이러한 사정이 언론에 공개되자 허가청인 문화재청은 “현장조사를 통해 문화재조사를 즉시 실시하도록 현지지도하고 사업시행자에게는 문화재조사지역 이외의 지역에 대해서는 즉시 공사가 가능함을 설명했다”고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문화재조사제도 개선안발표 하루전 터진 사건
 4월29일 재개된 발굴작업은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날 오후 2시경 공사장 포크레인 한대가 고분위치로 추정되는 발굴작업 현장의 나무뿌리 하나를 송두리째 걷어내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석관묘의 정확한 시기나 성격, 구조등이 미처 파악되기도 전에 작업현장 주변의 흙더미가 와르르 무너졌고 발굴중인 문화재는 송두리째 훼손돼 버렸다.
 오랫동안 발굴작업 재개를 기다려온 회사 입장에서는 기껏 다시 시작된 작업이 하염없이 더디게 진행되자 그동안 참았던 분통이 터졌을 만하지만 발굴작업중인 문화재 연구위원과 문화재청으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중대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개발의 와중에 문화재를 훼손한’ 중대사건이라는 점 말고도 이 사건이 언론의 조명을 받은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사고당일인 29일은 정부가 ‘매장문화재 조사절차 간소화’를 골자로 한 제도개선방안을 발표하기, 바로 하루 전이었던 것이다.
 다음날인 4월30일 문화재청은 그동안의 복잡했던 행정절차를 단축하는 등 문화재조사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내용의 개선방안을 제2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보고했다. 골자는 “현재 140일이 소요되는 문화재 조사절차와 처리절차를 간소화해 40일로 단축하는 것, 조사기관 설립요건과 인력의 요건을 대폭 완화하여 현재 1,880여명인 조사인력을 대폭 확충하고 발굴대기 수요를 해소하는 것, 조사비용 절감으로 기업의 부담을 경감하는 것” 등이다.        
 이처럼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이 회사가 겪었던 많은 문제는 이날 발표된 개선안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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