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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대시론] 안광진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당진지회장 - 출발선은 공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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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후배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애들이 어느 대학 부설 유치원에 모두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작년까지 이 유치원은 경쟁이 워낙 심해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는데 현 정부가 영어몰입교육을 발표하면서 이곳저곳에 영어유치원이 생기더니 대학 부설 유치원이 원아가 없어 추가 모집을 통해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너털웃음을 웃었지만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벌써 현 정부가 들어선지 3개월이 되고 있지만 일선 학교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에 대한 지침이나 내용이 별로 없는 상태다. 더욱 큰 문제는 정식 지침이나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지도 않는 방침들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면서 일선 학교는 정부 지침보다는 언론을 통해 정부의 정책을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의 언론 플레이는 결국 이에 빠르게 반응하는 사교육 시장만 키우는 결과를 낳게 되어 후배의 자녀들처럼 어부지리를 얻게 되는 경우도 생기는 거다.
게다가 교육에 대한 변화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는데 우려는 더욱 커진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다 문제가 있으니 ‘모두 바꿔!’ 딱 이 한마디로 집약되는 것이 현 정부의 교육정책이다. 과연 지금까지의 교육이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바꾸면 교육이 진짜 잘 되는 것인지? 검증되지도 않은 정책들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정신없이 쏟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영어몰입교육이 그렇고, 영어수업을 모두 영어로 진행하는 것도 그렇고, 우열반 문제도 그렇고, 심야 보충수업 문제도 그렇다. 당장 실행할 수 없거나 실행이 불가능한 정책들을 조율도 하지 않고 덜컥 발표했다가 슬그머니 빼버리는 한심한 아마추어리즘이 정부의 교육정책에 묻어 나오고 있다. 이럴진데 학생, 학부모, 교사의 불안은 오죽하랴.
누구나 아는 토끼와 거북이 우화가 있다. 토끼와 거북이가 달리기 경주를 하는데 토끼가 빨리 달리다 거북이의 꾸물거림을 보고 냅다 잠을 자버리고, 거북이는 꾸준히 기어서 결국 이기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당연한 결론을 말한다. ‘봐!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거야’라고. 물론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토끼와 거북이가 과연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것이 맞는 지에 대한 고민이다. 조건이 다른데 같은 선에 세우고 경쟁을 하라고 하는 것이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것이 우화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교육현실에서 점점 심해지고 있다.
현 정부 교육정책의 방향은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전면적인 경쟁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쟁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해서 인재를 양성하자는 거다. 그런데 현실의 문제는 모든 아이들의 출발선이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처한 위치가 다른데 이것을 일률적으로 한 줄로 세우고 경쟁을 시킨다면 누가 경쟁에서 이길지는 불 보듯 뻔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 농촌에 사는 학생은 거의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것이 학교교육을 살리는 길이란다. 무한경쟁을 통하면 학교교육이 살아난단다. 능력있는 학생들에게 더 투자하면 우리나라가 부강해진단다. 그런데 능력이 조금 부족한 학생들은 어떻게 하지? 부모의 경제력이 부족한 학생은 어떻게 하지? 농촌에 사는 학생들은 어떻게 하지? 내용적으로 출발선이 다르지만 ‘거북이처럼 무조건 열심히 기어. 그러면 혹시 개천에서 용 나올지 몰라.’ 이를 학교교육의 방향이라고 말하는 현 정부의 교육관에 착잡할 뿐이다. 물론 소외되는 학생들을 기준으로 본 편협한 시각이라는 비판도 나올 법하다. 그러나 최소한 헌법에 보장된 교육받을 권리가 모든 국민에 있다고 볼 때, 정부는 형식적인 출발선이 아닌, 적어도 내용으로서 공평한 출발선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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