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정의 달 5월도 일주일이 채 남질 않았다. 항상 이맘 때면 기억에 떠오르는 분이 계시는데 고등학교 때 교목으로 계셨던 김종수 목사님이시다. 흰 한복 두루마기를 즐겨 입으시고 늘 온화한 미소로 학생들의 머리를 잘 쓰다듬어주셔서 아이들 사이에서 ‘아버지’로 불리셨다. 그 분이 어버이날을 맞아 설교를 하셨는데 당신의 돌아가신 어머님에게 불효했던 젊은 시절을 회고하면서 손수 지으신 시 한편을 눈물을 흘리시며 낭송하실 때에 많은 학생들이 함께 슬퍼했던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나에게도 어머니라고 하는 단어는 사랑과 함께 아픔으로 다가온다.
일사 후퇴 때 이북에서 내려오셔서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동생과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마포의 염산교회 전도사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오빠, 그리고 오랫동안 홀로 되신 당신의 어머니가 가족의 전부였고 그 또한 생계를 위해 떨어져 살아야 했었던 어머님, 그런 어머님으로부터 나는 염리동의 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그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세상을 볼 수 있게,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온전하게 태어나게 해준 어머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린다. 유난히 병치레도 많았던 나와, 폐결핵으로 기침을 하면 어김없이 피를 쏟으시는 아버지의 건강을 챙기시느라 여념이 없으셨던 어머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생활이 어려워도 배움의 길을 열어 주셨던 어머님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나도 없었으리라.
올해도 3학년을 맡고 나서 학급아이들과 상담을 했다. 가족상황에서부터 앞으로의 진로와 희망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가족에 관한 내용을 물을 때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보고 가슴이 아팠었다. 부모가 헤어진 가정의 아이들과 편부 혹은 편모와 살고 있는 아이들 심지어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살고 있는 아이 등 사랑을 받고 살아야 할 나이에 너무 일찍부터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에 콧잔등이 시큰해왔다.
가정의 달 5월이 어쩌면 이들에게는 더욱 슬프고 외로운 달이 되었을지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오월을 맞으면서도 즐겁고 행복한 가정 속에서 사랑받는 많은 아이들 저 편에서 자신의 처지에 한숨을 쉬며 눈물 흘리는 아이들은 없는지 보다 세심하게 살펴야 할 때인 것 같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