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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08.07.07 00:00
  • 호수 718

전쟁기 희생사건 ‘진실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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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당진·석문·합덕·신평 등지 우익희생사건들

6ㆍ25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8년째 되는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진실화해위)가 당진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려 관심을 모았다.

진실화해위는 지난달 17일 제74차 위원회 회의를 개최한 자리에서 ‘금산지역 적대세력 사건’ 등과 함께 ‘당진지역 적대세력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이 사건들에 대해 진실규명신청을 했던 당진주민 25명에게 6월23일자로 결정사항을 통지해왔다.

이 사건들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인민군이 점령했던 7월부터 9월까지와 인민군이 당진에서 퇴각하던 9월28일을 전후해 일어난 사건 25건이다.  주민 25명은 정부가 ‘한국전쟁전후 희생자’에 대해 조사 접수를 받은 지난 2006년, 이 사건들에 대해 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내용에 따르면 25인이 신청한 25건의 사건은 지역별로 당진읍, 석문면, 합덕ㆍ신평면 등 대략 세가지로 크게 나뉜다.

통지에 다르면 당진읍에서는 읍내리 공동묘지와 시곡리 야산에서 희생사건이 발생했다. 읍내리 공동묘지에서는 당시 8월3일과 9월27일 두 시기에 걸쳐 희생사건이 발생했다. 두 시기 모두 희생자들이 당진군 각 읍면에서 당진내무서로 연행되어 감금되었다가 그곳에서 약 1㎞ 떨어진 공동묘지로 끌려가 총살되었다. 두 시기에 걸쳐 희생된 사람의 규모는 최소 98명에서 최대 210명이다. 시곡리 야산에서는 9월28일 밤에 희생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들은 송악면 거주자들로 22일과 28일 사이에 기지시리에 있는 송악분주소로 연행되어 감금되었다가 인근 시곡리 야산으로 끌려가 골짜기에서 총살되거나 죽창 쇠창에 찔려 희생됐다. 희생규모는 약 20명이다.  

석문면 노학산에서도 9월28일밤 희생사건이 있었다. 약 20명의 석문거주자들이 26일과 28일 사이에 석문분주소와 양조장으로 연행되어 감금됐다가 노학산으로 끌려가 방공호에서 총살되거나 죽창 쇠창에 찔려 희생됐다.

합덕읍에서는 당시 예산군에 거주하던 장모씨가 합덕읍 성동리 성동산에서 희생된 사건이 있었으며 송악면 봉교리에 거주하던 이모씨가 당진내무서로 연행됐다가 합덕읍 구양교 밑에 수장된 사건이 발생했다. 신평면에서도 신송리에 거주하던 유모씨가 연행을 피해 피신했다가 신평면 거산리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진실화해위는 “희생자들은 대부분 1950년을 전후한 시기 경제적 지위와 우익단체 활동경력 등으로 희생되었고 사건은 당시 정치보위부원과 지방좌익에 의해 발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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