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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제징용후 마을이장 지내다 전쟁때 좌익에 희생된 아버지

“아버지 명예 회복됐으면…” 구자명 어르신 김태숙l승인2008.07.07 00:00l(7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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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읍에 사는 구자명(80, 사진). 어르신은 지난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선친의 사망에 대한 진실규명 통지를 받았다. 

선친 고(故) 구성회씨는 전쟁당시 40세로 송악면 광명리 이장과 대한청년단원을 지내던 중 당진군에 인민군이 진입해있던 9월22일경 자택에서 송악분주소로 연행되었다가 당진읍 시곡리 야산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시신은 당시 가족과 동네 주민들에 의해 수습되었다.   어르신은 지지난해에도 정부조사를 거쳐 선친이 해방전인 1941년부터 2년간 일본에 강제징용됐던 사실에 대해 확인통지를 받았다.

일제 식민시대에는 일본의 강제징용으로 고통받고 해방 후에는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인민군 치하에서 총살당한 아버지... 아버지라고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해방전후의 그 역사적 질곡을 벗어날 도리가 없었으련만 나이 사십 젊은 나이에 허망하게 죽고도 진실규명과 확인통지 이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어르신은 답답하고 억울하다.  더욱이 1982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40년간 경찰에 몸담아오면서 나름껏 대한민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자부하는 어르신이다.

“제주 4ㆍ3항쟁 희생자의 경우는 진상조사도 하고 유공자대우와 보조금지원까지 해주면서 우익의 희생에 대해서는 모른다 하면서 탑이나 세워주는 정도니...” 어르신은 그 점이 영 마뜩치 않다. 그러나 어르신도 한국전쟁이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김 구 선생에 대해서도 ‘민족주의자였고 국민의 존경을 받을 만한 분’이라고 말했다.

“내가 바라는 건 아버지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 뿐이야.” 어르신 말씀이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고도 이름 석자 못찾은 분들이 많은데 그에 비하면 이렇게라도 밝혀지고 기록에 남게된 것도 의미있는 일 아닐까요?

어르신은 대답이 없으시다. 하긴 모든 자식의 어버이에 대한 마음이 그러할진대 어떤 효도가 충분하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까.

 

 


김태숙  tskim@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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