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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엔 호주머니를 달지 않죠” - 서양옥, 순성 적십자봉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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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엔 호주머니를 달지 않죠”

나누고 빈손으로 떠나는 게 참삶

장애 딛고 봉사에 헌신



서양옥

순성 적십자봉사회 회장



그녀의 얼굴에서 어두웠던 과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목발을 짚고 걸어야 하는 3급 장애인이라는 사실도, 무언가를 꼭 짚고 일어서는 그녀의 모습을 보기전에는 알아 차릴 수 없다. 그녀는 그만큼 활달하고 낙천적이다. 사람을 좋아해 따르는 사람도 많은 사람.

순성면 갈산리에서 은혜한복집을 운영하는 서양옥(59세)씨를 일컬어 주위 사람들은 ‘인덕이 많은 사람’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의 집에는 항상 주위 사람들이 ‘심심할 때 먹으라’며 넣어주고 간 사탕봉지에서부터 장애인에게 좋다는 베개, 병원 갈 시간이 되면 차량을 대주는 사람까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는 ‘후원자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그것은 어려운 살림에서도 베푸는 것을 신조로 알고 살아온 그녀의 넉넉한 마음의 댓가이다.

순성 적십자봉사회장을 맡고 있는 서씨는 얼마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순성면내 무의탁노인 7분을 모셔다 합동생일잔치를 여는 자리에서 무료로 한복 7벌을 손수 만들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곱게 단장해주어 주위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주위에서는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결같이 말하지만 서씨는 되레 망가진 몸으로라도 누굴 위해 일을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도박을 업으로 알고 산 남편을 만나 뒤틀리기 시작한 그녀의 인생역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그녀의 ‘건강한’ 모습이 얼마나 놀라운 인간승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자식 건사는 뒷전으로 하고 노름에 빠져 몇달씩 집을 비우던 남편,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삯바느질 하며 눈물과 한숨으로 밤을 새우고 남편 떠난 시댁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눈보라 치는 날 어린자식 안고 친정으로 돌아와야 했던 그때를 회상하는 서씨의 눈에는 눈물과 기막힌 웃음이 수시로 교차했다.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자식들이 장성하자 서씨는 남편과 헤어졌다. 자식들이 나서서 부모의 이혼을 주선한 경우는 아마 처음이었을 거라고 서씨는 말했다.

서씨는 남대문시장에서 배운 바느질 솜씨로 한복 만드는 일을 했다. 손재주가 뛰어나 일거리는 늘 쌓였고 마침내 당진 읍내에 한복집을 차릴 수 있었다.

형편도 서서히 피기 시작했고 그런대로 살만해졌을 즈음, 시샘이라도 하듯 서릿길에 가게로 나가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큰 수술을 아홉번이나 해내고 2년간 병원신세를 지고 나왔을 때 무던히도 속을 썩이던 남편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남남이었지만 서씨는 남편의 수의를 손수 만들어 마지막 가는 길에 입혀 주었다. 바로 그 때 수의엔 호주머니를 달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렇게 아둥바둥 살다가도 결국 마지막 갈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서씨는 아직도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지난해 적십자봉사회장을 맡아 명절 때면 집집을 돌며 쌀을 거둬 무의탁노인들을 찾아가고 어버이날에는 온천욕까지 갈 계획이라고 한다. 어렵게 살면서도 지나가는 걸인이 있으면 불러 먹던 밥이라도 나눠주었다는 서씨.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몸으로라도 나눠주는 인생이 좋은 것 아니냐며 활짝 웃는 서씨의 얼굴에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아름다운 인간냄새가 풍겨났다.
이명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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