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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 사라지는 마을 네번재] 송산면 동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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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마을에서 산업단지로”

동곡리 자연마을 명

●위동목골(상동목)과 아래동목골(하동목): 옛 면천군 창택면 상동곡리 지역으로 동목골 위쪽에 있는 마을이 상동무골, 아래에 있는 마을이 하동무골이다.
●쌍천동 : 원건너 동쪽 해안가에 있던 마을로 샘이 둘이 있어서 쌍천이라고 했다. 동곡리 김응두(90)씨에 따르면 쌍천동은 쌍천이라는 샘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나는 물로 일대 농지에 농사를 지을수 있을 만큼의 물이 솟았다고 한다. 특히 삽교천이 막히기 이전까지 농수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쌍천은 이곳의 중요한 농수가 되었다. 또한 농수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중요한 식수원이기도 했다. 김응두씨는 “옛날에 이곳에서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다 떨어졌으며 그곳에 샘이 생겼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고 상천에 얽힌 이야기를 말했다.
●꽃밭미: 쌍천동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은포: 수문개라고도 하며 원건너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는 지형이 쑥 들어간 갯가였다. 현재 현대제철(한보철강 공장)이 들어선 일대다.
●장자골: 동묵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장자가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산줄기가 쭉 뻗은 골자기에 위치한서 유래했다.
●두릉골: 장자골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뱃말: 아래동무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배가 닿았다고 한다.
●속동말: 위동목골과 아래동목골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원건너: 동곡리에서 보았을때 성구미(성구미 인근)를 원(?) 건너 즉 평지 너머 저쪽에 있는 곳이라 해 원건너라 부른다.

●뺄국: 윗동목골과 아래아랫동목골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개머리: 동목골 동쪽 갯가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약 40미터 정도이다. 산의 모양이 마치 개머리처럼 생겼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예전에는 해안가였다.
●한성염전: 쌍천동 밑에 있는 염전으로 한성여고 교육재단에서 경영하고 있다. 지금은 염전이 아닌 농지로 변해 농사를 짓고 있다. 한성염전은 일제시대때 김준생이라는 사람이 막아 진구라는 사람이 사들였다가 한성학원에서 매입해 염전을 운영해왔다고 한다.
●자료 참조: 송산지방산업단지 문화재 지표조사 (2005. 5, 공주대학교) 

산업단지로 변한 당진의 해안

당진의 서북부 해안가 대부분이 공장지대로 전락해 버렸다. 송악 아산국가공단의 고대부곡지구에는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입주해 가동되고 있으며 현대제철은 407만㎡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중에 있다.
특히 당진군에 입주하고 있는 기업들의 현황을 보면 상당수가 철강을 중심으로 한 철강제조 및 금속업체들이다.
올해 8월말 현재 114개 기업이 공장설립 승인을 신청해 4년 연속 100개이상의 기업을 유치하는 성과를 올린 당진군은 지난 2005년부터 4년 연속 100개 이상의 기업을 유치해 총 596개의 기업을 유치했다.
이처럼 수많은 기업들이 입주를 희망하고 몰려들면서 군은 약 1700만평의 산업단지를 조성해나가고 있다.
이에따라 당진의 해안가는 더 이상 옛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됐다.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갯벌에는 이미 공장이 들어섰으며 항포구에는 고기잡이 어선을 대신해 대형 화물 선박들이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현대제철(주)이 건설 중인 송산지방산업단지가 승인되고 건설교통부의 승인을 거쳐 변경승인신청이 충남도에서 최종 승인됨으로써 송산산업단지의 규모는 당초 317만㎡에서 90만㎡ 증가된 407만㎡로 면적이 늘어났다.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로 송산면 가곡리와 동곡리, 유곡리 일부가 산업단지로 수용된다. 공사는 이미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다. 가곡2리 성구미 포구 앞바다는 이미 포구의 기능을 잃었다. 동곡리의 경우도 언제 대형 공사장비들이 들어설지 모르는 상황이다.  

“어촌마을 염전지역에서 산업단지로”
이옥순씨가 살아온 동곡리의 기억

동곡리는 면천군 창택면 지역으로 동목골 또는 동목으로 불리웠다. 동곡리는 상동곡리와 하동곡리로 나뉘어져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창택면 가곡리를 일부 병합해 동곡리로 개칭돼 당진군 송산면에 편입,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곡리에는 동곡, 쌍천, 꽃밭미, 두룽골, 뱃말, 속동말, 은포, 원건너, 장자곡 등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윗동목골과 아래동목골은 동곡리 원 마을로 이곳에서 자란 주민들이 인근으로 파생돼 자연마을을 형성하는 등 동곡리 마을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동곡리에서 40여년을 살아온 이옥순(66)씨. 남편 문영세(67)씨를 서울에서 만나 결혼한 지 2년만에 이곳 동곡리로 내려와 살게됐다고 한다.
당시 편찮으신 시부모님을 모시려고 내려온 것이 한평생을 살게 됐다고 한다. 이씨는 당시 동곡리에 내렸왔을 때 집이 몇채 되지 않는 오지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남편은 한성염전에서 염부로 일하고 자신은 집에서 조그만 텃밭을 일구며 바다에 나가 굴도 따고 조개도 잡으며 3남매를 키웠다.
“처음에 남편을 따라 내려왔는데 집이 뜨문뜨문 몇채 없고 어두워지면 화장실 가는 것도 무서워서 밤새 참곤 했어. 남편은 한성염전 염부로 일하고 나는 바다에 나가 굴도 따고 조개도 캐다 팔아서 쌀도 사고 했지. 그렇게 힘들게 벌어서 논도 사고 얼마 안되는 텃밭도 마련해 3남매를 키웠지 뭐. 그런데 한보가 들어서면서 바다도 막히고 어업보상 조금 받은 것이 전부여.”
동곡리 일대에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한보철강이었다. 1990년대 초 한보가 바다를 막고 공장을 세운 것이다. 이때부터 마을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외지인들이 조금씩 늘었다고 한다.
“외지인들이 마을에 들어와 음식점이나 가게 등을 장사를 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한보가 부도나고 현대제철이 들어와 공장을 늘린다고 해 이제는 쫓겨나게 생겼어. 마을 원주민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땅이라고는 조금밖에 없는데 어디가서 무엇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이여.”
머지 않아 떠나야할 텃밭에서 풀을 메고 있는 이씨. 앞으로 살아갈 걱정보다 당장 텃밭에 심어야할 곡식이 우선이라며 텃밭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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