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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미래의 씨앗을 뿌리는 농업인을 만나다6 - 서민원 면천면 원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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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은 죽어서도 한평생 일하던 땅으로 돌아간다”
발전없는 농업은 희망이 없어 “신지식 젊은 농업인이 육성돼야 한다”

▲ ●합덕 소소리 출생 ●합도 초등학교 졸업 ●합덕 중학교 졸업 ●합덕농업고등학교 졸업 ●천안 연암대학 원예과 졸업


▶편집자주… 당진군은 농업웅군이자 축산웅군이다. 경지면적 전국 2위, 쌀생산량 전국 1위이며 한우와 양돈, 양계 등 축산업 또한 전국에서 최상위권의 사육규모를 보이고 있다. 쌀·쇠고기 수입 개방, 조사료가격 상승, 잇단 산업단지 개발로 인한 농지 수용 등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농축산업에 종사하며 인류에 꼭 필요한 식량 생산에 힘쓰고 있는 농민들을 만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당진에서 씨를 뿌리고 가축을 돌보며 살고 있는 우수농가, 귀농인, 젊은 농업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고민과 농촌 현실 그리고 미래 농업의 비전과 의미를 조명하고자 기획보도를 마련했다.

※ 본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일흔이 넘으신 부모님도 아직 농업을 하고 계세요. 연로하신데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더군요. 하지만 죽는 그날까지 농사를 짓겠다는 부모님의 말에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농사꾼’이란 그런거에요. 죽어 땅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씨앗을 뿌리는...”
그는 농작물 판매가격이 높게 측정되거나 판매가 가능할 만큼 재배에 성공했을 때 농업인으로서 큰 기쁨을 느낀다고 말하며 농업인으로서 만족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 했다. 농사꾼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 수익을 창출해 농업을 육성화 시켜야 농촌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연은 순수 그 자체, 거짓말 않죠”
고등학생 때부터 농업에 관심을 가졌던 서민원(37)씨는 합덕농고에서 국화재배와 분재를 배웠다. 그리고 더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천안연암대학 원예과에 진학했다. 대학생활 동안 전문적인 농업 지식을 쌓던 그는 식물조직배양에 재미를 느끼고 서울에서 난 배양 실습을 하며 자신의 꿈을 펼쳐나갔다.
“사실 큰 꿈을 갖고 농업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농촌에서 태어나 자라며 보고 배운 것이 농업이었으니까요. 주변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부모님의 논, 밭농사를 거들면서도 그는 시대에 맞춰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그래서 대학에도 진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부모님의 일터를 이어 받기보다 자신만의 농사를 짓고 싶었다. 부모님들 역시 아들이 농업을 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지만 자신들이 일궈온 터전에서 보람을 찾고 싶어 하셨다고.
“농업이 고되고 힘든 일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만족 할 수 있는 성과를 거두며 산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죠. 가끔 태풍이나 폭우로 인해 한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지만 자연은 거짓말을 안 하거든요. 노력한 만큼 다시 돌려주니까요.”
대학에서 식물조직배양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와 실습을 통해 농업지식을 갖게 된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난과 함께 웃고 울던 10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서울에서 배운 난조직배양법을 이용해 25평의 하우스에 배양실을 갖추고 호접난을 배양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IMF의 파급효과가 미치기 전인 90년대 초는 난에 대한 소득율이 매우 높던 시기였다. 그는 난 배양에 그치지 않고 농업후계자 자금을 지원 받아 하우스 200평 규모의 호접난 재배도 시작했다.
“난을 배양하고 더 나아가 재배까지 했죠. 정말 일이 재밌었어요. 난에서 피는 꽃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고 할까... 보통 농부가 가을 추수 때 벼를 보게 되면 마음이 풍요롭다고 하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었죠.”
정성스럽게 재배한 난들이 최고의 상품가격으로 당당하게 시장에 출시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일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그러던 중 IMF가 몰아닥치고 그 풍파는 농가를 덮쳐 왔다. 난 시장은 포화상태였고 경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소비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난은 선물용이나 관상용으로 많이 쓰입니다. 경기가 갑작스럽게 휘청하더니 환율이 바닥을 치고 문 닫는 가계가 부지기수로 늘어났죠. 이런 상황에서 일반 서민들은 주머니 닫기가 급급했죠 저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난 재배를 그만 둘 수는 없었어요.”
그는 자식 같은 마음으로 정성 들여 키운 난들이 제때 판매 되지 않아 하우스 안에서 꽃이 시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팠다고. 하지만 IMF를 거쳐 지금의 경제 불황까지도 난 재배를 포기 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에게 난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물가는 상승, 농촌 생산물 가격은 하락
IMF 때도 끝까지 지켜온 호접난 재배를 포기하고 그는 현재 저온식물인 풍난과, 깅기아난으로 품목을 바꿔 재배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기름 값 때문이다. 호접난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온도유지를 위해 드는 기름의 양을 감당할 수 없어 내린 결정이다.
“기름 값 상승으로 인해 면세유 가격도 같이 오르더군요. 면세유 가격이 오른 것도 모자라 난 재배를 위해 쓰이는 자제 값도 따라 올라 어쩔 수 없이 기름 값이라도 적게 드는 품목으로 전향했죠.”
기름값, 자제값은 오르는 반면에 난 값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다른 난 재배업을 하고 있는 농민들도 일손을 놓고 있는 추세다. 난 재배업종 뿐만 아니다. 농촌에서 생산되는 모든 작물들이 생산비용에 맞지 않게 하락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20대 젊은 물결, 농촌으로 유입돼야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은 도태되듯 농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그는 농업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한다고 말했다. 그 대안점을 찾을 사람들은 새로운 생각과 지식을 갖고 있는 젊은 농업인들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농업사회도 각자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경쟁하는 무한경쟁체제에 돌입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누구도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이겨낼 수 있지만 지금 농업인구의 대부분이 노인인 지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대처하기 어려운 실태에요. 새로운 젊은 물결이 농촌으로 들어와 농업 부흥에 힘써줘야 하는데 모두들 농업을 피하고 있죠.”
농업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은 그는 아직도 ‘젊은 농업인’이란 소리를 듣는다며 농업의 미래가 되어야 할 20대 층이 그만큼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가을을 맞은 들녘에 수확이 한창인 바쁜 농부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점점 일손은 모자라고 농가에 남은 사람들은 노인들뿐이다.
서 씨는 농업인은 죽어서도 한평생 일하던 땅으로 돌아간다며 농촌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남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농민들은 IMF도 이겨냈듯 지금의 경제 불황도 이겨낼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나라 경제 기반인 그들은 땅에서 거짓 없는 수확을 거둬들이는 기쁨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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