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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사라지는 마을 일곱 번째… 송악면 오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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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와 민물고기가 풍성했던 오곡리”

●편집자 주

당진군에는 현재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한 송산 제1산업 단지를 중심으로 연관 산업 단지 입주계획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 군내에는 송산제1산업 단지를 비롯해 대규모 산업단지가 추진중에 있다. 기존 고대부곡 공단을 합친다면 전국 최대 규모다. 이처럼 전국 최대 규모의 산업단지가 조성됨에 따라 조상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이들이 있다. 산업화, 도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마을 전체가 지도속에서, 역사속에서 사라져야 하는 현실에 처해 있다. 또한 우리나라 10대 아름다운 포구로 불리웠던 성구미포구는 산업단지에 수용됨으로써 이제는 역사로만 남게 됐다. 이에 본지는 산업화로 사라져 가는 마을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취재 보도할 계획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이뤄졌습니다

 

오동나무 많아 ‘오곡리’

송악면 오곡리가 속해있는 황해경제자유구역 송악단지는 황해경제자유구역개발계획에 의해 중흥리, 복운리, 한진리, 부곡리와 함께 가장 먼저 개발이 진행될 예정에 있다. 오곡리는 원래 홍주목 신북면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년)에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면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신북면 오사(梧寺), 수곡(壽谷)의 각 일부와 중흥면 광대리, 화고리(바루미)가 병합되어 지금의 당진군 송악면 오곡리가 되었다. ‘오곡’이라는 이름은 오사와 수곡에서 한자씩 따서 명명되었으며 마을에 오동나무가 많았던 데에서 ‘오(梧)’자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곡리는 오사(梧寺, 머구절), 수곡(壽谷, 수구지), 광대곡(光大谷, 광대리, 광대골), 바루미, 비석골 등 5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었다. 머구절은 옛 신북면 오사리 지역으로 ‘머구절’이라는 절이 있었던 것에서 이름이 연유됐다(‘머구’는 오동나무를 뜻한다고). 머구절은 비석골 동쪽 신평 이씨 종산이 있는 마을로 부곡리와 중흥리로 가는 곳에는 머구절 고개가 있다. 수구지는 신북면 수곡리 지역으로 머구절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현재 오곡리 마을회관 근처가 바로 수구지로 불리던 곳이다. 광대곡은 옛 중흥면 광대리 지역으로 수구지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복운리와 경계지역이다. 바루미는 옛 중흥면 화고리 지역으로 머구절 동쪽에 있는 높이 36m의 모양이 바릿대처럼 생긴 바루미산 우측산 밑에 있는 마을이다. 바루미산은 바리뫼, 바리미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 새곡교회가 있는 곳이 바루미이며 바루미산 고개를 넘으면 부곡리로 이어진다. 비석골은 바루미 마을입구에 있는 마을로 신평 이씨의 큰 비석이 있어 비석골이라 불렸다.

 

개발된다 말만... 답답하기만 하다

오곡리에서 태어나고 60평생을 살아온 김길섭(62) 이장은 개발로 인해 오곡리에는 세대수가 늘고 있다며 현재 164세대 정도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기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오곡리에서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대수도 늘고 주변에 원룸도 들어서고 있는 중이죠. 이들 외에 오곡리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기반으로 살고 있습니다.”

또 “50대에서 70대의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며 “모두들 고향에서 순박하게 살아온 분들”이라고 말했다.

“사는 건 예전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요. 농사 지으며 먹고 살고 있죠. 개발이 된다해서 뭣하나 내 땅에서 맘대로 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김 이장은 개발이 된다고는 하나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없어 주민들은 더욱 갑갑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풍성하던 민물고기 산업개발로 사라져

송규섭(65) 오곡리 노인회장은 예전에 오곡리는 민물자원이 풍부한 곳이었다며 미꾸라지나 붕어, 잉어 등이 많이 잡혔다고 회상했다.

“작은 냇가 같은 게 있어서 여름에는 뗏목을 타고 다니면서 민물고기를 잡고 그랬어요. 언젠가는 잡은 민물고기를 닭한테 먹였는데 나중에 낳은 알을 보니 계란이 아주 컸던 기억도 나네요. 그만큼 오곡리는 민물고기가 풍성했던 곳입니다.”

겨울에는 논에 물을 가뒀다가 얼음지치기와 스케이트를 타기도 했었다고. 하지만 최근 개발로 인해 수십 여종이 넘었던 민물고기들이 이젠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오곡리의 이름이 오동나무에서 와서 마을에 오동나무를 가득 심어 특성화하려고 했는데 이젠 개발이 된다고 하니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네요.”

송 회장은 집 뒤편이 바로 바루미로 불리던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집 옆에는 100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여전히 푸르름을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0년 걸리는 개발 끝나면 난 죽고 없을거야”

오곡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담배가게에서 만난 문만성(70)씨는 “마을에 살고 있는 대부분이60~70대의 노인들로 10년이 넘는 개발기간 동안 다 죽고 보상 받는 건 보도 못 한다”며 쫓겨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농사지으면서 여태 살아왔는데 다 늙어서 고향을 떠나라고 하니 막막하기만 해. 난 그저 고향에서 작은 땅이라도 받아 살고 싶은 마음 뿐이여.”

40년 동안 담배가게를 하고 있는 최순자(75)씨는 담배 몇 갑 팔며 근근이 살아왔는데 이젠 이것도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개발이 이내 될 줄 알았는데 십년 넘게 걸린다며? 그때 되면 난 아마 죽고 없을 껴. 고향을 떠나기 싫지만 나라에서 한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있나. 난 이제 담배가게도 접으면 뭐 먹고 살 것도 없어. 땅 있는 사람들이야 좀 낫지. 땅 없는 사람들은 죽은 채 그냥 가만히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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