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3-28 10:44 (목)

본문영역

[기획-우리지역 문화재를 찾아서⑧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년의 숨결 간직한 안국사지

은봉산 중턱에 자리, 세 가지 문화재 간직
국내 유일의 ‘발’ 가진 석불, 매향비 품은 ‘배바위’

[편집자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문화유산과 문화유적, 그리고 후손에 전해주어야 할 가치를 가진 무형문화재가 많이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명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없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본지는 지난해 10회에 걸쳐 연재했으며 올해에도 지역의 숨어있는 명물과 문화유산을 보도해 넓게는 당진의 관광산업 발전을, 단기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유산 보존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총 18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며 지난해 소개됐던 문화재 중 변화가 있는 곳은 재취재해 지면에 담을 예정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졌습니다.

수당리에서 안국사지까지 올라가는 길목에는 코스모스, 백일홍 등 주민들이 정성껏 가꾼 꽃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매미 우는 소리만이 울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 수당리. 은봉산에 둘러 싸여 있는 정미면 수당리에는 천년 고찰 안국사가 자리 잡았던 절터가 남아 있다.
수당리 마을회관에서 얼마쯤 올라가면 원당지가 나온다. 평일 오후인데도 은봉산을 오르기 위해 운동화 끈을 조이는 등산객이 눈에 띄었다. 원당지에서 시작해 봉화산과 안국사지를 거쳐 다시 원당지로 돌아오는 1시간10분짜리 등산코스부터 은봉산과 구은봉산까지 올랐다 원당지로 돌아오는 코스 등이 마련돼 있다.
등산코스의 시발지인 원당지를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은봉산 중턱에 자리한 안국사지가 눈에 들어온다.
안국사지는 천여년 전 고찰이었던 안국사가 자리 잡았던 절터로 고려시대에 번창했던 절로 추정되고 있으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백제 말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번창한 대사찰이라고도 하고, 절 안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고려시대에 창건됐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한다. 한때는 수백명이 수도하던 큰절이었다고 전해지나 확실치 않다. 폐사된 시기 역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폐사됐다가 1929년 승려 임용준이 주지가 되어 일으켜 세웠고, 그 후 다시 폐사되었다고 한다.
석불, 석탑 그리고 매향암각
안국사지에는 세 가지 문화재가 남아 있다. ‘안국사지 석불입상(보물 제100호)’과 ‘안국사지 석탑(보물 제101호)’ 그리고 배바위라고 불리는 커다란 바위에 명문이 새겨진 ‘당진 안국사지 매향암각(충청남도기념물 제163호)’이 그것이다.
안국사지 석불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 보살상이 놓여 있다. 본존불상은 굴곡이 없고 얼굴은 크고 네모지며 목은 짧고 귀는 길고 두 팔은 신체에 붙어 있다.
커다란 돌을 머리에 이고 있는 전체적인 모습이 불안정한 것이 특징. 안국사지 석불은 생김새로 볼 때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친근한 멋을 풍기고 있으나 섬세하게 조각되지 않고 덩어리화된 형상이 고려불상의 건조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지난 2004년의 시굴조사에서 땅에 묻혀 있던 국내의 석불 중 ‘발’을 가진 불상은 안국사지 석불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
석불이 위치한 아래에는 안국사지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규모로 보아 원래 5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기단부와 탑신부만 남고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석탑에는 오랜시간 풍파를 이겨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탑신에 새겨진 불상의 흐려진 윤곽에서도 푸른 이끼가 앉은 기단에서도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안국사지에서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미륵매향비’가 새겨져 있는 ‘배바위’다. 고래바위라고도 불리는 이 배바위는 비문이 새겨진 암각비다.
석불 뒤에 자리한 매바위는 어림잡아도 성인 십여명이 둘러야 할 정도 큰 바위다. 바위에는 두 개의 암각문이 새겨져 있다. 바위를 바라보고 서서 왼편에는 목공전설, 오른편에는 매향비문이 새겨져 있다.
매향이란 미륵을 만들기 위해 향나무의 목심을 땅에 묻는 의식을 말하는 것이며 매향의식을 행하고 이 사실을 기록한 비를 매향비라 한다.
매바위에 새겨진 비문은 지금 일반인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윤곽이 흐려져 있다. 오랜시간 외부에 노출되어 있었던 탓.
배바위에 새겨진 비문을 풀이하면 ‘경술년 시월 서쪽의 염솔마을에 나다니던 목공이 이곳에 묻혔노라.’ ‘경오년 이월 여미 북쪽 마을 입구의 동쪽갯가에 결웅스님의 향을 삼가 묻고 한 언덕인 아미타불 고을 앞에 향도일동이 비석을 세워 표하노라’이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