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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재
  • 입력 2009.09.21 00:00
  • 수정 2015.06.12 22:14
  • 호수 776

[우리지역 문화재를 찾아서9-면천면 성하리 ‘영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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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어우러진 암반 위 7층 석탑

▲ 유리광전 현판.

탑 세우고 영험하다 하여 ‘영탑사’
불태워진 가야산 흔적 고스란히 남아

●편집자주 /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문화유산과 문화유적, 그리고 후손에 전해주어야 할 가치를 가진 무형문화재가 많이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명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없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문제의식 아래 본지는 지난해 10회에 걸쳐 연재했으며 올해에도 지역의 숨어있는 명물과 문화유산을 보도해 넓게는 당진의 관광산업 발전을, 단기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유산 보존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은 총 18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며, 지난해 소개됐던 문화재 중 변화가 있는 곳은 재 취재해 지면에 담을 예정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졌습니다.

면천면 성하리 상왕산. 수백 년은 버텼을 법한 굵고 오래된 느티나무 사이를 지나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자 영탑사의 너른 마당과 대웅전 전경이 펼쳐진다. 영탑사는 통일신라 말엽 도선국사가 창건한 후 고려시대 때 보조국사가 중건한 사찰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찰 명칭에 대한 유래로는 보조국사가 대방 앞에 5층 석탑을 세우고 그 모습이 영험하다 하여 영탑사로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의 5층 석탑이 바로 충남 문화재자료 216호인 ‘영탑사 7층 석탑’이다.
7층 석탑은 영탑사 법당 뒤 야산의 천연암반 위에 기단부 없이 세워져 있다. 높이는 3.9m이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본래 5층으로 세워진 이 석탑은 1920년 신도들이 2층을 더 올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나중에 올린 6층과 7층은 반전이 심해 기존 층과 차이가 난다.
지붕돌은 얇고 평평하며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다. 상층부로 갈수록 줄어들어 직선적인 느낌을 주며 탑신의 폭이 좁고 긴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보이고 있다. 바위와 한 몸처럼 서있는 모습이 주변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풍경이 자연스럽다.
탑의 유래와 관련된 이야기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영탑사 유리광전에 봉안된 유형문화재 제110호 마애약사불과 관련된 이야기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사찰을 둘러보다 기이한 빛을 내고 있는 바위가 있어 심상치 않게 여겨 그 바위에 불상을 조각한 것이 바로 마애약사불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석탑이 법당 뒤 바위로 옮겨왔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 이야기는 가야사 폐사 후 스님들이 영탑사로 금동삼존불과 법당의 범종을 옮겼다는 것이다. 가야사는 덕산에 있던 사찰로 조선시대 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쓰기 위해 불태운 사찰이다. 후에 부서진 가야사 석탑을 옮겨와 쌓은 것이 영탑사 7층 석탑이라고 한다.
현재 대웅전에 가야사 범종이 있는 것을 볼 때 두 번째 이야기가 신뢰할 만한 하다. 범종은 높이가 60㎝, 상대부분 지름이 31㎝인 중종으로 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219호다. 범종에는 ‘1760년 2월 가야사 법당 금종을 백 근의 쇠를 녹여 만들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덕산, 면천, 지금의 홍성인 홍주 지역에서 시주한 신도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영탑사 주지 초운스님

“5살 아이가 쓴 유리광전 현판”영탑사에 있는 7층 석탑을 보러 왔다고 하자 초운스님은 “문화재를 보러 온다고 하기에 금동삼존불 보러 오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안에 사리가 모셔진 것도 아니라 탑을 보러 오시는 분은 거의 없어요. 신도들이나 종종 있는 관광객들도 사찰을 둘러보는 김에 한번 올라갔다가 구경하시고 오는 거죠.”
초운스님은 영탑사에서 의미가 남다른 유물로 유리광전 현판을 소개했다.
“옛날 재령 미씨 가문에 자손이 없어 마애불 앞에서 기도를 드려 어렵게 아들을 얻었다고 해요. 그 아들이 5살 됐을 때 쓴 것이 유리광전 현판이죠. 어린 아이가 쓴 글씨라 잘 보면 서체가 세련되지 않고 끝마무리가 덜 된 느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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