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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사람들 3 - 당진어시장 박영자, 이희숙 할머니] “‘혹시나 박씨나’하고 나오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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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업자, “생선팔아 자식들 시집장가 보냈지”
젊은 손님 구경하기 힘들고, 손님 한명 없는 날도 있어

[편집자주]
 ‘유흥가의 영업도 종료를 하고 동이 터올 때쯤 청소차가 지나가며 지난밤 쏟아냈던 배설물을 치운다. 그러고 나면 식품 배달차, 그리고 부지런한 서민들의 차가 지나간다. 청소를 하고, 문을 열고 물건을 배달하고…. 그렇게 도시를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이 뒤에서 바삐 움직이는 시간이다. 새벽 시간에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시 화장한 사람들에게 도회지를 넘겨주고 뒷선으로 물러난다. - 여행가 이안수’
본지는 새해를 맞아 모두가 잠든 시각, 묵묵히 자신의 일터에서 세상의 아침을 준비하는 이웃들을 만날 예정이다. 인력시장에 나온 노동자, 어두운 밤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하루 장사를 준비하는 시장 상인들.... 서민들과 동행하며 나눈 새벽이야기를 연재한다.

봄으로 들어선다는 ‘입춘’이라는데 새벽바람이 평소보다 더 춥다. 365일 물마를 날 없는 당진 어시장 거리가 영하의 온도로 곳곳에 얼음이 얼었다. 일치감치 가게에 나온 박영자(72) 할머니는 얼어붙은 바닥을 녹일 양으로 소금 한 줌을 쥐어다 뿌리고 있다.
박씨 할머니는 동갑내기 이희덕 할머니와 30여년째 당진재래시장 안 어시장에서 원당수산을 운영하고 있다. 가게라고 해봐야 벽도 지붕도 없이 대야에 바지락, 냉장고에 냉동 생선을 놓고 파는 한뎃장사지만 두 할머니에게는 자식들 키우고 시집장가 보낸 소중한 일터다.   
물건을 대다 쓰는 도매상에서 바지락이며 굴을 가져다 놓고 7시를 넘겨 아침밥상을 맞는다. 도매가게 사장을 불러다 함께 하는 아침상에는 생선을 넣고 끓인 김치찌개와 살얼음이 언 동치미, 굴무침이 올랐다. 이희덕 할머니가 뒤늦게 ‘출근’해 아침식사에 합류했다.
“아이고, 웬 굴이래.”
며칠 전 순성에서 온 손님이 사가고 남은 굴을 박씨 할머니가 양념해 무쳐 놓은 것을 이씨 할머니가 한술 뜨며 하는 말이다.
“이 장사해도 굴도 못 먹어 보잖아, 안 그래도 먹고 싶었는데 맛 좋구만.”
요새는 굴이 제철이다. 할머니들도 오늘 아침에 ‘앞으로 굴 금이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도매장사의 이야기에 한 드럼을 들여다 놓았다.   
손님도 없는데 이른 새벽부터 가게 문을 연 이유를 물었다.
“조금 전에 다른 가게 주인이 와서 바지락 사가는 거 봤지? 일찍 나와서 도매가게에서 바지락을 미리 가져다 놓은 걸 판 겨. 도매가게에서 바지락 까는 일거리를 받기도 하고. ‘혹시나 박씨나’ 하고 나오는 겨.”
두 할머니는 벌써 30년 가까이 함께 시장에서 새벽을 맞고 있다. 박씨 할머니는 큰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부터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큰 아들은 어느덧 오십을 넘어섰다. 당진군청 2청사자리에 장이 열리던 시절부터 생선을 팔고 있다고.
집마다 잔치가 많고 외식문화가 발달하지 않던 시절에는 너도나도 재래시장을 이용했던 터라 하루에 60~70만원을 벌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새는 하루종일 손님 한명이 없을 때도 있고 돈 10만원 벌기가 하늘에 별따기란다.
“예전에는 잘 됐지. 그러니 애들 공부도 가르치고 다 했지. 지금은 애들은 그만두고 내 목구멍에 들어갈 것도 없어. 요새는 돈 벌 생각으로 일한다기 보다. 경로당 간다는 생각으로 나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라고 봐야지. 집에서 놀아도 보는데 그게 더 힘들어.”    
예전에는 생물도 진열해 놓고 팔았지만 요새는 바지락과 굴만 생물로 팔고 냉동된 생선 몇 종류만 장만해 두었다. 젊은 손님들은 얼굴 구경하기 힘들고 수십년째 거래를 하는 단골들이 종종 찾을 뿐이란다. 두 할머니의 주된 일은 도매가게에서 받아온 바지락을 까는 일이다. 설 명절, 대목을 앞두고 있지만 특별히 많이 팔리고 말 것도 없다고. 그나마 장날에는 설악가든 가는 길목까지 늘어서는 오일장 때문에 손님들 발길이 끊긴다고.
몇 해 사이에 할아버지를 먼저 하늘로 보내고 홀로 사는 두 할머니가 바라는 건 죽는 날까지 건강히 사는 것뿐이란다.
“오늘 저녁까지 시장에 나와 장사를 하다가 밤에 집에 돌아가서 조용히 하늘나라 가는 거. 그게 바라는 거지, 뭐 달리 바랄게 있나.”
대형마트가 곳곳에 들어서 예전 같지 않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재래시장 상인들은 새벽바람을 맞으며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30년 동업자, “생선팔아 자식들 시집장가 보냈지”
젊은 손님 구경하기 힘들고, 손님 한명 없는 날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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