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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 만난 사람-신평우체국 신영철 집배실장] 정(情)’ 배달하는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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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면의 터줏대감 신영철씨”

 신평면 집배원 생활 29년

29년간 신평우체국에서 집배원 생활을 해온 신영철(53) 집배실장. 그의 성실함과 근면함은 신평우체국은 물론이고 당진우체국까지 소문이 났다.
29년의 경력이 말해주듯 신평면에서 터줏대감과 같은 그는 신평면 내에서 들려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
매일 아침 7시 20분이면 신평우체국으로 출근길에 오르는 그는 당일 신평면으로 발송될 우편물을 각 지역별로 분류하고 배달 업무를 시작한다. 하루 종일 고된 배달에도 늦은 저녁시간까지 다음 날 배달할 우편물을 집배실에서 분류하고 퇴근길에 오른다.

자전거로 우편배달 하던 시절

“1981년 11월 1일 신평우체국으로 첫 발령을 받았죠. 당시에는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없이 자전거로 모든 우편물을 배달해야만 했어요. 젊은 시절이라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었죠.”
교통편도 불편하고 도로망도 확충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맑은 날씨에도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다녀야 할 만큼 힘든 일이었고 삽교호나 맷돌포와 같은 먼 거리까지도 우편물 배달을 해야만 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라도 내리는 짓궂은 날씨에는 더욱 힘들기만 했다. 이렇게 짓궂은 날씨에 우편물을 배달하는 날이면 자전거 타이어에 붙은 진흙들을 떼어내기 바쁜 상황에 한시라도 우편물이 늦을까 더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신 집배실장은 “일은 지금보다 당시가 더 힘들었지만 편지에 대한 기다림과 설렘이 있던 때 였다”며 “근래에 들어서 편지가 줄어들고 각종 세금고지서 및 영수증, 광고성 우편이 많아 편지를 기다리고 반갑게 맞아 주던 사람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각종 영수증 등을 들고 지역 사람들을 찾아갈 때면 도리어 미안해 질 정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담긴 편지들이 줄어드는 현 상황에서 그는 변해가는 세월을 느끼고 있다고.

각양각색의 소식 전해

힘들고 지치는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신 집배실장이 우편물 배달을 나갈 때면 그를 반갑게 맞아 주는 이들이 많았다.
멀리 떠나보낸 자식걱정에 편지를 기다리는 부모와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이제나 저제나 소식을 기다리는 어머니, 사랑하는 이의 편지를 기다리는 연인들. 각자의 사연은 가지각색 이었다. 주민들도 소식을 전달해주는 신 집배실장을 함께 반갑게 맞이했고 정을 쌓아 나갈 수 있었다.
특히 각 지역의 노인들의 경우 거동이 불편해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사기위해 신평면으로 나가기 곤란한 일들이 많았다. 그럴 때면 신평의 마당발 신 집배실장에게 심부름을 부탁하는 일이 굉장히 많았다.
“부피가 많이 나가는 물건들이었다면 심부름을 할 수도 없었고 어르신들도 부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만큼 어르신들이나 각 마을 주민들과 정을 쌓아 나갈 수 있었죠.”
당시에는 한글로 써내려간 편지를 읽지 못하는 노인들이 대다수였다. 아무리 반가운 편지가 온들 누구하나 읽어줄 사람 없이 혼자살고 있는 노인들이었다. 이런 편지가 있을 때면 이들의 눈이 되어 주기도 했다.
길이 잘 포장되지 않았던 그때는 굳이 정해진 길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자전거로 산길을 오르내려야 했고 논과 밭둑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농번기 때 논과 밭을 지나다 보면 새참을 먹는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기도 했고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반가운 인사가 즐겁기만 했다.
신 집배실장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항상 주민들을 한식구라 생각 한다”며 “주민들과 딱딱한 업무관계가 아닌 정을 나누는 것이 이일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약력
-정보통신부장관 표창 3회
-충청남도 체신청장 표창
-현 신평우체국 집배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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