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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입력 2010.03.08 13:24
  • 호수 801

[심화섭 당진군농업기술센터 생활지도팀장] 뿌리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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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아들 생일날이었다.
아침 일찍 조촐한 생일상을 차리고, 정성을 더하기 위해 식탁을 장식할 들꽃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늦은 가을 들국화라도 만날까 기대하고. 아파트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기대했던 들국화는 없고 잡초로 분류된 역기를 발견했다.  분홍색꽃과 쭉뻗은 잎이 그런대로 만족스러워 한 줄기 뽑아 꽃과 잎부위를 잘 정돈해 화병에 꽂으니 나름 아름다웠다. 화려하지 않은 역기지만 식탁에 생기가 돌았고, 그 식탁을 만드는 과정동안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파트 주변을 헤매고 다닌 나 엄마의 정성까지 표현되었다고 생각하니 몹시 흐뭇했었고, 가족들의 반응을 기대하니 흥분되기까지 했었다.
물론 기대와는 달리 가족들은 나만큼 감동하지 않았다. 혹시 잠결에 못 봤을까 봐 확인까지 시켰지만, “응, 봤어”라는 간단한 댓구 뿐... 봤다니 다행이다.  다시 화병에 꽂힌 역기를 봐도 내 눈에는 예쁘다.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며칠이 지났다.  분홍빛 감도는 꽃은 시들었다. 버렸다. ‘역시 꽃은 아름다우나 수명이 짧아’ 혼잣말을 해가며...
쭉 뻗은 잎은 여전히 싱싱하다. 며칠이라도 더 두고 보고 기억하고 싶다. 아들을 사랑하는 맘으로 데리고 온 풀.
몇 주가 지났다. 쭉 뻗은 잎은 여전히 싱싱하다. 아들을 사랑하는 맘으로 데리고 온 풀. 시들때까지 두고 감상하기로 했다.
또 몇 주가 지났다. 여전히 싱싱하다. 아니 오히려 더 싱싱하다.
말라죽었어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 싱싱해지다니... 꽃병에서 잎을 꺼내 보았다.
줄기 밑으로 잔뿌리가 잔뜩 나 있었다.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흡수해서 생명현상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동했지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고 뿌리내리고 자라가는 생명력. 화려하지도 주목받지도 않았지만, 쭉 뻗은 잎 역기 풀의 생명력은 아름다움보다도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자라 온 익숙한 환경을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시집 온 농촌여성. 익숙한 직업을 떠나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귀촌, 귀농인, 다문화가족들, 자의든 타의든 낯선 환경에 던져진 주변 사람들이 떠 오른다. 
잘난 본인을 자랑하면서 주변 탓만 하며 서서히 시들어 가는 사람, 묵묵히 적응하며 사귀어가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가는 평범한 사람, 화려하지 않지만 환경에 적응하며 뿌리내리며, 새로움을 만들어 나가는 들풀같은 생명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제 낯선 여건이 주어지면 질문한다. 낯선 환경은 창조를 위한 나의 새로운 터전인데 여기에서 시들 것인가, 뿌리내릴 것인가. 탓만 할 것이냐 창조할것인가? 
쭉 뻗은 잎 역기 풀은 그 후 한참동안 싱싱하였고 꽃대를 내더니 분홍빛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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