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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사람들(4) 야쿠르트 배달원 손미영 씨] "새벽부터 배달, 오후에는 농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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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엄마니까”
사람에게 받은 상처, 사람에게 위로 받아

[편집자주]
 ‘유흥가의 영업도 종료를 하고 동이 터올 때쯤 청소차가 지나가며 지난밤 쏟아냈던 배설물을 치운다. 그러고 나면 식품 배달차, 그리고 부지런한 서민들의 차가 지나간다. 청소를 하고, 문을 열고 물건을 배달하고…. 그렇게 도시를 돌아가게 하는 사람들이 뒤에서 바삐 움직이는 시간이다. 새벽 시간에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시 화장한 사람들에게 도회지를 넘겨주고 뒷선으로 물러난다. - 여행가 이안수’
본지는 새해를 맞아 모두가 잠든 시각, 묵묵히 자신의 일터에서 세상의 아침을 준비하는 이웃들을 만날 예정이다. 인력시장에 나온 노동자, 어두운 밤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하루 장사를 준비하는 시장 상인들.... 서민들과 동행하며 나눈 새벽이야기를 연재한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제법 오래도록 내리고 있다. 새벽부터 배달일을 하는 이에게 비와 눈만한 불청객도 없다. 여름 장맛비나 겨울 폭설에 비하면 엄살이지만, 그래도 일일이 우산을 폈다 접었다하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부슬부슬 내리는 비도 반갑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평소보다 20여분 늦게 출발해서 인지 손미영(51, 송악 가학리) 씨의 마음이 분주하다. 봉지에 우유와 각종 요구르트를 챙겨서 배달 코스를 돈다. 당진읍 읍내리 남산빌라를 시작으로 가원예식장을 거쳐 읍내리 로타리를 돌아서 다시 거꾸로 올라온다.
손 씨는 두 가지 직업을 가진 일명 투잡족이다. 요즘에는 농한기라 배달일이 끝나면 집안일을 돌보고 쉴 틈이 나지만, 농번기에는 사정이 다르다. 새벽 6시전에 일어나 채비를 하고 7시부터 배달을 시작해 오전 내 배달 일을 마친 뒤에는 당진읍내에서 우유나 요구르트를 판매한다. 오후 3시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농삿일이 시작된다.

일찍이 남편을 여읜 손 씨는 두 아들을 혼자 힘으로 키웠다. 손 씨 말마따나 두 내외가 바득바득 벌어도 쉽지 않은 살림살이를 여자 혼자 하려니 녹록치 않았다. 손 씨는 15마지기 정도의 논농사를 혼자 지어 살림을 꾸려나갔다.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틈날 때마다 옷 수선 가게를 운영했다.
큰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뒤로는 하숙비라도 보탤 요량으로 야쿠르트 배달 일을 시작했다.
새벽에는 배달을 하고 낮에는 농사일을, 밤에는 옷수선을 한 셈이다. 그렇게 부지런히 큰아들 뒷바라지를 하며 고단히 살면서도 손 씨는 먼저 간 남편을 원망하지는 않았다고.
“힘들어도 남편 원망은 안했어요. 물론 함께 책임지기로 하고 두 아들을 낳은 거지만, 그 양반도 먼저 가고 싶어 간 게 아니니까 원망할 일이 아니죠. 고생해서 큰아들 대학 졸업을 시켜 놓으니 둘째 아들 학비를 보태더군요. 며느리도 잘 얻어서 홀로된 시할머니에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면서도 집안일도 얼마나 잘 하나 몰라요. 낙천적으로 생각하면 스트레스 받을 일도 별로 없지요.”
두 아들이 학업을 모두 마친 뒤로는 배달일과 수선가게를 그만뒀다가 요새는 농사일이 바쁘지 않을 때 집에서 놀기도 뭐하고 생활비에 조금이라도 보태볼까 해서 배달 일을 운동 삼아 다시 시작했단다.
배달일도 역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상처를 받는 것도 위로를 받는 것도 모두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언젠가는 어떤 사람이 오해를 해서 시비가 붙었는데 ‘요구르트 배달일 하는 주제에~’라며 몰아붙이는 거예요. 그때는 정말 화가 나고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도 한 가정의 주부고 집에서는 가장으로서 위치가 있는데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하루 종일 밥 한술도 못 떴어요.”
당시 일이 고스란히 떠올랐는지 손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차에서 내려 다음 집에 우유를 가져다주고 돌아온 손 씨가 이번에는 따뜻한 기억들을 꺼내 놓는다.
“고객 중에 외국인이 있거든요. 매달 말일에 수금을 하러 가면 아침마다 맛있는 우유를 챙겨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잊지 않아요. 어떤 할머니 한 분은 추운데 고생한다며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세요. ‘우리네도 먹고 살기 어려웠는데 요새도 먹고살기가 어려운 건 마찬가지’라는 할머니의 말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더라고요.”
홀로된 여든이 넘은 시어머니와 아들 내외, 손자까지 모두 4대가 함께 산다는 손씨는 절에 갈 적마다 “지금처럼만 살게 해달라”고 매번 같은 소원을 빈단다. 살림이 넉넉해서 ‘지금처럼만’이 아니다. 시어머니 크게 아프신 곳 없이 곁에 계시고, 아들들 자기 앞가림하며 살고, 자신도 건강히 일할 수 있는 ‘지금처럼’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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