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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에서 자연친화적 녹색 도시로 성장

국내·외 지역마케팅 활성화 지역을 가다(3)
‘62년 분단 역사’ 간직한 노바고리차
김창연l승인2010.11.01 19:08l(8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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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만의 슬로베니아 노바고리차. 62년이라는 짧은 역사 뒤에는 지역의 상권과 문화, 건축 등을 살리기위한 노력들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본래 세계 1차 대전 발발 이후 독일군의 점령을 받았던 고리차는 독일군의 패전으로 이탈리아군대가 들어와 지역을 점령했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할 당시에는 유고슬라비아령으로 변경되면서 기존의 고리차 지역을 둘로 나눠 고리차와 노바고리차가 생겨났다.
본래 하나였던 지역이 두 나라로 나뉘면서 국경선이 생기게 됐고 이들의 왕래는 쉽게 이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리차 지역은 인근 상권의 중심지였으며 1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 여건이나 시장 기반이 다져진 곳이었기에 고리차 주민들에게는 커다란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노바고리차 주민들의 경우 불편함은 극에 달했다. 노바고리차는 허허벌판에 묘지만 있는 황무지와 다를 바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남겨진 노바고리차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상권과 문화공간, 계획된 도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노바고리차 62년 역사 담긴
고리스카 박물원
1991년 노바고리차는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하고 이후 유럽연합(EU)이 체결되면서 2004년 슬로베니아가 EU 가입했다. 이후 2005년도 노바고리차 역에 고리스카 박물원을 개관하고 노바고리차의 역사를 담은 물건들로 가득 채웠다. 62년의 짧은 역사지만 러시아, 이탈리아, 미국 등 점령군인의 제복을 그대로 가져다놨으며 각종 신문기사 및 독립 이전의 사진, 등의 자료를 보관 중에 있다. 고리스카 박물원에는 각국 저널리스트, 베를린 박물관 등 약3만 명이 다녀갔다.
1991년 슬로베니아가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유고슬라비아의 이름이 적힌 1991년 노바고리차가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하게 되면서 국경선을 가로지르던 철벽을 뽑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광장 바닥에 철벽의 숫자인 57과 15의 숫자를 조각해 놨다.
고리스카 박물원 마린카 벨리코니쟈 안내원에 따르면 1950년 8월 13일 고리차가 노바고리차로 분리된 이후 2년간 서로 왕래하지 못하면서 노바고리차 사람들은 불편과 불만이 팽배해져갔다. 사람들의 불편과 불만이 극에 달하자 국경을 넘어 고리차의 상권을 이용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노바고리차 사람들은 국경이 열린다는 기대에 5천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드는 일이 벌어졌다. 모여든 주민들로 인해 국경이 잠시 열리고 그동안 구입하지 못한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노바고리차 주민들은 고리차의 상점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이탈리아 극우 잡지에서 ‘Hanno Invaso Gorizza(고리차가 습격당했다)’란 타이틀로 희화화된 기사가 나왔고 노바고리차에서는 슬픈 현실을 왜곡한 기사로 인해 상처받은 것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박물관에 전시했다.

트라우니 광장을 중심으로
노바고리차 만의 상권 조성
노바고리차 도시가 허허벌판으로 남게되자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대통령이 새로운 도시 건립을 목적으로 도시 마스터플랜 작성하기 시작했다. 지역 유명 건축가 에드워드 라우니가 자연친화적 녹색도시를 계획했으나 1950년 재정지원이 끊기고 건물 고도제한이 풀리는 등 도시계획이 수립된 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지만 트라우니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 도서관, 오페라극장 등이 계획적으로 들어서있어 계획 도시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다.
노바고리차의 펠라호텔은 4성 호텔로 이곳에 들어선 유명 카지노에는 주말마다 2~3천명의 이탈리아인들이 찾아와 카지노를 즐긴다. 베니치아에 있는 카지노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먼 이탈리아인들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 본래 작은 바에서 시작된 카지노를 철저한 육성 계획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해 성공한 사례다.
주말이면 노바고리차 사람들은 고리차로 쇼핑을 고리차 사람들(이탈리아인)은 노바고리차의 카지노를 찾아오고 있다.

[인터뷰]고리스카 박물원 마린카 벨리코니쟈(Marinka Velikonja) 안내원

“62년 분단역사 그대로 간직”

“노바고리차 주민들은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고리차에 남아있는 시내 중심가로 가야했지만 국경에 가로막혀 왕래가 쉽지 않았습니다. 고리스카 박물원에는 분단으로 인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곳입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신문기사에서부터 점령국의 이름이 지워진 푯말, 군복, 주민들의 생활이 담겨진 사진 등 62년의 노바고리차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을 때는 노바고리차의 실정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컸지만 이제는 역사를 바로 알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야할 때”라며 “젊은 세대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산업의 융복합화 추세에 맞춰 서로 다른 주제나 산업 분야의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마케팅을 성공시킨 사례를 알아보고 당진에 적용 가능한 모델과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획기사는 10회에 걸쳐 보도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공동 취재단-강원도민일보, 경남신문, 광주매일신문, 국제신문, 울산신문, 전남일보, 전북도민일보, 충청타임즈, 한라일보, 광양신문, 당진시대, 안산신문, 양산시민신문, 영주시민신문, 평택시민신문)

 


김창연  kcy841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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