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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천의 교사일기 282] 1월을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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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처럼 이렇게 한 달 이상 연속으로 아침온도가 영하 10도 아래를 맴돈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6-70년대가 더욱 추웠다고 생각되는 이유 중 하나는 당시의 가옥들이 한옥이나 한옥을 개조한 집들이 대부분이어서 서민들 대부분은 연탄 온돌로 난방을 했었고 한지로 붙인 문 틈사이로 찬 바람이 들어와 방안에서도 한기를 느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추위를 모두가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말이었던 1969년 각설탕 선물을 들고 담임선생님의 집을 찾아뵈었었다.
당시 선생님은 서울 영락교회 근처에 3층 건물을 소유하고 계셨는데 3층에 선생님 가족이 사셨다. 3층 방문을 여는 순간 그분의 자녀들이 러닝셔츠 차림으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교복 안에 두툼한 내복을 입은 상태였었는데 담임선생님의 방안에 앉자마자 후끈 더위를 느낄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었다.
세상이 바뀌어 방안에서 한기를 느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연탄으로 겨울을 보내야 하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 전부터 정치권에서는 내년 선거를 의식해서인지 복지에 대해 여야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여야의 주장만이 다를 뿐 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려운 가정에 혜택을 주는 것이 복지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서 차별적이고 맞춤식의 복지정책을 선호한다.
그렇지만 복지에 앞서 용산참사의 피해자와 같이 지자체나 국가사업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갈 곳이 없어 애태우는 많은 선의의 피해자들과 이 땅위에서 국법을 준수하며 성실히 노력해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빈곤이 되풀이되는 극빈층들을 위한 정부의 정책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과제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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