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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웃의 밥줄 이야기 4 - 당진장례식장 장례지도사 황상연 씨]

우리가 가장 슬플 때, 곁을 지키는 사람 우현선l승인2012.02.10 19:43l(8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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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 주변에는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많은 이가 손사래 치며 꺼리는 일을 자부심을 갖고 해내고 있는 이웃들. 본지는 새해를 맞아 이동권 씨의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를 모티브로 당진에 사는 이웃들을 만나 그들의 직업이야기를 들어 봤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이들은 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던가, 못이 박히는 고통이라 했던가. 하지만 유가족들은 마음껏 슬퍼할 새도 없이 고인을 떠나보내는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조문객들을 맞아야 한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유가족의 곁을 지키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돌보는 이들이 있다. 염쟁이, 염사, 장의사 등으로 불리는 장례지도사가 그들이다. 장례지도사 황상연 씨는 10년 동안 변함없이 통곡하는 유가족들을 대신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돌보고 있었다. 

장례에 대한 모든 절차 진행
“아이고... 어머니~ 안돼요, 안돼.”
“할머니... 가지마세요.. 엉엉.”
당진장례식장 지하 입관실 문 밖으로 가족들의 통곡소리가 새어나왔다. 연고 없는 이의 눈시울까지 적실만큼, 유가족들은 고인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들 사이에 흰 가운을 입은 황상연(36) 씨가 서 있었다.
“상주님부터 헌화하세요. 자, 다음은 입관하시겠습니다. 남자 유족분들은 이리 오세요.”
차분한 황 씨의 안내에 따라 유가족들은 절차를 이어갔다. 유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고인은 황 씨의 안내에 따라 관에 들어갔다.
“고인이 사망 직전 입고 있던 옷을 탈의하고 하얀 베넷저고리를 입히고 칠성판에 뉘인 뒤 일곱 매듭으로 묶습니다. 이러한 절차를 순서에 따라 수시, 반함, 소렴, 대렴이라 하죠. 요즘은 보통 3일장을 치르기 때문에 사망 후 3일째 되는 아침에 입관절차를 진행합니다.”
황 씨는 “요즘은 대부분 장례식장을 이용해 상가집 풍경을 보기 어려워 졌다”고 말했다.
“시대에 따라 장례문화도 변하고 있죠. 예전엔 장의사나 염사, 염쟁이로 불렀지만 이제는 장례지도사가 올바른 표현이에요. 대학에 관련학과가 생기고 자격증까지 취득해야 하는 전문직이죠.” 
황 씨는 각종 사건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도 한다. 얼마 전,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합덕 일가족 화재 사건 현장에도 직접 찾아 불에 탄 시신을 수습했다고.

 

   
 

 

 

“안치실도 혼자 못들어갔죠”황상연 씨는 10년차 장례지도사다. 장례식장을 개업할 계획이었던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한 장례 일은 당시 스물여섯이었던 황 씨에게 무섭고 버거운 일이었다.
“어린 나이였으니까요. 당시엔 제가 장례지도사 중에서 최연소였다더군요. 누구나 죽음이나 고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잖아요. 한 동안은 안치실에 혼자 들어가기가 무서워 괜히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면서 들어가곤 했어요.”
왜 아니었겠는가. 보통사람이라면 공동묘지만 지나도 으실으실한데, 시신을 직접 만져야 하는 일이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선배의 한 마디에 황 씨는 두려움을 잊었다. 
“무조건 집안일이라고 생각하라더군요. 고인이 이모나 할머니, 동생이라 생각하면 두려움은 없어지고 마지막 가는 길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남는다는 거였어요. 마음을 고쳐먹고 세월이 흐르면서 두려움과 함께 잘 지워지지 않던 고인의 얼굴들도 금세 잊어버리게 됐어요.”
10년 동안 다양한 죽음을 지켜본 황 씨는 ‘부모의 마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다며 농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할아버지, 우울증에 시달리던 딸의 자살로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아버지를 지켜보며 가족의 의미와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게 됐다. 한편 고인이 된 부모의 장례를 서로 치르지 않으려고 미루는 형제들을 보며 화가 날 때도 있었다고.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잊지 못할 일도 많았죠.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가 가족들이 모두 떠난 입관실에 끝까지 남아 제 손을 잡으면서 고맙다며 우실 때는 슬픔을 당한 분들 곁을 지키는 일에 대한 보람을 느껴요. 얼마 전에는 반 년 전에 초상을 치른 할머니가 손자와 함께 찾아와서 직접 쓴 편지를 전해주셨어요. 일이 힘들 때마다 꺼내어 보는데 힘이 됩니다.”
“사람은 좋은데 직업이 싫대요”
나름 자부심을 갖고 보람을 느끼며 하는 일이지만 주변의 시선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 황 씨는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저도 이제 결혼을 서둘러야 할 때가 됐는데 직업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요. 주변에서 좋은 사람이 있다며 소개를 시켜주겠다고 하실 적마다 ‘절대 장례식장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해요. 죄 지으며 사는 것도 아닌데 속상하죠. 막상 소개를 받아 나가도 ‘사람은 좋은데 직업이 싫다’며 등을 돌리는 여성분들도 있어요.”
황상연(36) 씨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시체를 다루는 일을 하는 장례지도사를 색안경 끼고 보는 이들이 많다”며 “장례지도사들은 슬픔에 빠진 유가족 곁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돌보는 전문직”이라고 말했다.
매일 죽음을 지켜보다 보니 자연스레 삶의 소중함에 대해 더 절실히 느낀다는 황 씨는 인터뷰 말미에 “색안경 벗고 저와 만나고 싶은 여성분들은 언제든 연락 달라”며 공개 구혼했다. 내친김에 자기자랑을 해보라 했더니 “여태 인터뷰해 봤으니 아실 거 아닙니까~”라며 자신만만이다. 오늘도 황상연 씨는 죽은 자를 돌보고 산 자를 위로하러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우현선  mirina16@dj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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