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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이야기 18] 한성아파트 경비원 차규석 씨
“아파트 전 주민이 사장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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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세대 주민들의 마당쇠 자청하는 경비원
“정년 후에도 일할 수 있어 감사”

 

 

“아저씨, 103호로 온 택배 있어요?”
“아저씨~ 베란다에 물이 새요~”
“아저씨~ 이삿짐 날라야 하니까 주차장 차들 좀 빼주세요.”


오늘도 차규석(69) 씨를 찾는 주민들의 전화가 경비실을 울린다. 298세대가 사는 한성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차규석 씨는 “주민들이 우릴 믿고 산다고 생각하고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부터 큰 일까지 우리 집 일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고 말했다.
“흔히들 경비원이라고 하면 하는 일 없이 경비실에 앉아만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경비실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만 한다고. 허허허(웃음). 그런데 보기와 달리 잡일이 참 많은 직업이 경비원이에요.”
차 씨는 동료 경비원들과 3교대 로12시간을 근무한다. 아침 7시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아파트 주변 청소부터 시작한다.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음식물 쓰레기통이 꽉 찼는지 살핀다. 주민들이 하나둘씩 출근길에 나서면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아파트 곳곳을 돌며 순찰도 한다. 지하실이며 옥상에 누수가 되거나 화재가 일어나진 않는지 꼼꼼히 살핀다. 집을 비워 경비실에 보관된 물건들을 찾으러 오는 시각은 일정치가 않다. 새벽 2시에도 경비실 문을 두드릴 때가 있어 그나마 쪽잠을 자기도 쉽지 않다.
잠시 경비실에 들린 한 정비기사는 “경비원들이 하는 일이 뭐가 있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곁에서 지켜보면 잡일이 참 많다”며 “쉽게 말해 경비원에게는 주민 수만큼 사장이 있는 셈”이라고 말을 거들었다.

 

사장님이 경비원이 된 사연

경비원 차 씨도 한 때는 ‘사장님’이었다. 20년간 당진시장에서 대호정육점을 운영하며 당진상설시장 조합장을 맡아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었다.
“한 때는 저도 사장님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정육점을 더 이상 운영하기가 어려워 졌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정육점 문을 닫고 시작한 일이 경비원이었어요. 나이도 있고 따로 배운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처음에는 내 사업장에서 사장으로 일하다가 남의 지시를 들어야 하는 직장생활이 쉽지 않더군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처음엔 부담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함께 어울렸던 자영업자들과 만나는 일도 쉽지 않아졌다. 하지만 차 씨는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관한 덕분에 슬럼프나 우울증은 겪지 않았다.
“처음에는 괜히 움츠려들고 그랬죠. ‘나도 사장이었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이내 그런 마음 없어지더군요. 주변에서도 집에서 노는 것보다 무엇이든 일할 수 있는 게 좋다며 부러워하죠. 정년을 하고도 남을 나이인데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차 씨는 중외제약을 비롯해 당진의 각종 기업에서 경비원으로 6년 넘게 일하다 지난달부터 한성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어려운 일, 보람 되는 일

“경비원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순찰을 돌다가 불이 난 걸 목격하고 초기에 진압을 했던 일이에요. 밤중에 동료와 함께 순찰을 돌다 목격했죠. 칭찬도 많이 받았어요. 며칠 전에 아파트 앞에 상수도관이 터져 물이 콸콸 솟구쳐 나오는 것도  이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습했죠. 불시에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잘 해결했을 때 보람을 느끼고 뿌듯합니다.”
차 씨가 머무는 경비실 한편에 걸린 게시판에는 그의 신조가 적혀 있다.
‘인수인계 철저, 맡은 바 책임완수, 외부차량 진입 시 관심, 주민과의 소통, 담당구역 미화 관심’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다보니 자연히 별별 사람이 다 있어요. 아들뻘 되는 주민이 술 먹고 난동을 피우며 막대할 때는 속상하기도 하죠. 그래도 주민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내 일이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뿐만 아니라 서창수 소장님을 비롯해 아파트 경비원 모두가 작은 일이지만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있어요. 그러니 보람도 있고 즐겁게 일할 수 있죠.”
한편 차 씨는 “무엇보다도 초등학교에서 전교회장을 맡고 있는 손자 생각에 힘이 난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편집자주]  우리 주변에는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많은 이가 손사래 치며 꺼리는 일을 자부심을 갖고 해내고 있는 이웃들. 본지는 새해를 맞아 이동권 씨의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를 모티브로 당진에 사는 이웃들을 만나 그들의 직업이야기를 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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