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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줄이야기 21] 고대면 용두리
45년 된 대동약방 약업사 김 동 철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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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시내버스 매표, 동네 사랑방 역할도

 

 

각종 약들이 쌓여 있는 낡은 찬장, 수백 명이 수천 번은 앉았다 갔을 어느 제약회사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 의자, 80년대에 유명했던 감기약의 광고지. 고대면 용두리 대동약방의 풍경이다. 의약분업 이후 부쩍 늘어난 약국들이 고객유치를 위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요즘, 대동약방은 20여 년 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다. 약방 벽에 걸린 빛바랜 약업사등록증이 낡은 약방 풍경에 정점을 찍는다.
“약방 문 연지 얼마나 됐냐고요? 글쎄… 한 오십년 다 되지 않았을까. 저기 등록증에 찍힌 날짜를 보면 알 텐데… 낡아서 의자나 놓고 올라가야 보일 거예요.”
올해 87세 약업사 김동철 할아버지는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손녀뻘 되는 기자에게 존대를 하셨다. 약방과 함께 늙은 할아버지가 가리킨 등록증에는 ‘1968년 2월 28일’이라 새겨져 있다.
대동약방과 김동철 할아버지는 고대면 용두리의 역사이자 옛 시절을 기억하는 주민들의 추억이기도 하다.

병원하나 없던 고대면 유일의 약방

“의약분업이 되고 난 이후로는 약방 찾는 사람들이 부쩍 줄었지요. 그 전에는 이 근방에 약국도 없었어요. 병원이 들어선 지도 오래되지 않았고… 처음 문 열었을 때요? 그땐 좋았지. 장사 참 잘 됐어요.”
고대면소재지인 용두리에는 현재 서너 개의 약국이 영업 중이다. 그 중에서 대동약방이 제일 오래됐다.
“약방이라고 하면 약국과는 다르죠. 40년 전에 시험을 봐서 약업사에 합격을 했어요. 대학 나와서 면허 취득한 약사랑은 차이가 있죠. 약사가 아니어서 병원 처방전을 받아서 약을 지어 줄 수는 없지요.”
하지만 3, 40년 전만해도 상황은 달랐다. 약이 귀하던 시절, 고대면 일대에서 몸이 아픈 사람들은 대동약방을 먼저 찾았다. 한 밤 중에 배가 아프다며 대동약방의 문을 두드리던 일이 잦았다.
“그때는 소화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근처에 의원이 없으니 급하면 우리 가게를 찾아왔죠. 급하게 찾아와 약을 사가고 다음날 고맙다며 인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도 여럿이었어요.”

 

45년 외고집의 약업사

낡은 약방에 비해 약업사 김동철 할아버지는 정정했다. 약간 굽은 허리와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제외하고는 87세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45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대동약방의 모습이 그의 면모를 대변해 준다. “약업사라는 일 말고는 취미가 없어요. 다른 일을 해본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 약업사를 하기 전에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잠시 당진읍내에 있던 태양의원에서 의사선생을 보조하는 일을 했었어요. 그 뒤로는 고향에 돌아와 약방을 차리고 결혼도 하고 6남매 낳아 기르고 시집장가 보냈지요. 그게 여태껏 이어진 거지. 뭐, 별다른 이유가 있나. 내 일이니까 계속한 거지요.”
약업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산 김동철 할아버지는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직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 하지만 그에게 요즘 후회스런 일이 생겼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약방 문을 열 생각이지만, 내가 죽고 나면 대동약방도 없어질 테니 그게 좀 아쉬워요. 6남매를 키우면서 약방을 이어갈 자식을 하나 쯤 만들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가 되요. 50년 가까이 이어온 약방인데…”
 
고대차부, 이웃들의 사랑방

대동약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고대차부도 자연스레 떠올리기 마련이다. 고대면 용두리에 시내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동약방에서 시내버스표를 팔았다. 지금도 대동약방  건물 위에 커다란 글씨로 ‘고대차부’라 적혀 있다. 시내버스가 개통된 이후 지금까지 대호지, 정미, 석문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대동약방 앞에 정차한다.
“시내버스가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표를 팔았어요. 시내버스가 우리 가게 옆에서 잠시 쉬었다가 삼봉이나 대호지로 가거든요. 요즘이야 버스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그때는 가게 앞에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렇다보니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드링크도 사먹고 그랬지요.” 옛 시절 사랑방이었던 대동약방에는 요즘도 종종 이웃들이 들러 ‘피로회복제’를 마시며 김 씨 할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간다고.  

[편집자주]  우리 주변에는 사회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많은 이가 손사래 치며 꺼리는 일을 자부심을 갖고 해내고 있는 이웃들. 본지는 새해를 맞아 이동권 씨의 <우리 이웃, 밥줄 이야기>를 모티브로 당진에 사는 이웃들을 만나 그들의 직업이야기를 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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