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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을 만나다 15] 전 충남대학교 경상대학 이주영 교수
퇴직 후 대전충발연, 의제21에서 정책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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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로 서울대 졸업 및 독일 유학까지
교수로서 가진 교육에 대한 열정

△ 한정초등학교 1회 졸업
△ 서울 동성중·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 졸업
△ 독일 Koeln 대학교 경제사회대학 졸업
△ 독일 Bonn 대학교 법경대학원 졸업
△ 충남대학교 경상대학 교수
△ 충남대학교 신용협동조합 이사장
△ 충남대학교 평화안보대학원장
△ 서해안개발협의회 의원
△ 충청남도 종합건설심의위원
△ (사)대전충남발전연구원장
△ 대전의제21추진협의회 상임대표

전 충남대학교 경상대학 이주영 교수는 신평면 한정리 출신으로 한정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다.
1949년 당시 신평국민학교에 입학한 그는 1950년 신평초등학교 한정분교가 개교하며 인근지역 학생들과 함께 분교에 배정받게 됐다. 얼마 후 6.25전쟁이 일어나 어린 나이에 가난과 배고픔, 전쟁을 겪어야만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교사도, 마땅한 교실도 없이 갓 개교한 한정분교에서 교육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현재 마을회관으로 불리는 공회당을 1년 주기로 옮겨가며 수업을 받아야 했고 때로는 비좁은 공간으로 인해 산과 들에서 멍석을 깔고 공부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교과서도 없이 선생님이 칠판에 판서해 주는 내용을 마분지에 필기하는게 전부였죠. 전쟁이 일어나 전국 곳곳에서 남한군과 북한군의 전투가 이어지던 시절이었고 흉년까지 겹쳐 음식다운 먹을 거리를 구경하기 어려웠어요. 이런 상황에서 도시락은 꿈도 꾸지 못했지요. 봄이면 새순이 올라오는 소나무 가지를 꺾어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던 시절이었습니다.”
1952년 한정분교가 한정국민학교로 정식 인가를 마치고 이 교수는 당시 재학생 및 주민, 학교관계자와 함께 수수깡이며 짚을 가져다 교사를 건축하는 작업에 일손을 거들었다.


이렇게 초등학교 교과과정을 마친 그는 서울에 살고 있는 누나를 따라 동성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 교수는 “당시 합덕중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30리(약 12Km) 길을 걸어 통학해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며 “동성중·고등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면서 어머니께서 서울로 상경해 삯바느질로 학비를 마련하는 등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시작하면서 가정교사 일을 시작한 그는 점차 자신의 학비를 감당해 나가기 시작했고 어려운 집안 형편 속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부모님께서는 없는 형편에도 자녀 교육에 있어 상당히 적극적이셨죠. 집안 일이며 농사일을 거들어야할 상황에서 묵묵히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의 재정지원 없이도 학비를 벌어가며 서울대에 입학했고 졸업 이후 독일 대학원 유학까지도 마칠 수 있었죠.”

 

독일 유학 이후 맺은 충남대학교와의 인연

독일에서의 생활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 한국의 교육수준은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이었고 독일과의 교육방침이 맞지 않아 대학교 교육과정을 전부 재 이수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교수는 독일 퀠른(KOELN)대학교에서 석사, 본(BONN)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후 1982년부터 충남대학교 경상대학 교수로 부임해 지역경제학 및 교통경제학·세계정치경제론 등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해왔다. 특히 연구와 후학 양성에 열과 성을 다하는 한편, 국가의 지역균형발전과 대전충남지역발전을 위한 연구와 활동을 왕성히 해왔다.


“당시 어려운 형편에서 독일 유학을 강행했던 것이 큰 이점으로 다가왔습니다. 국내에 유학을 다녀온 인력들이 많지 않았던 시기였고 고향이 속해  있는 충청남도 권 대학이라는 점이 크게 다가와 교단에 서기로 결심했죠.”
당시 정치인 및 외교관의 꿈을 키우고 있던 그였지만 서울대학교 졸업 이후 장기간 독일 유학으로 인해 사회 진출이 늦어져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 교수는 충남대학교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면서 28년간 교수로 활동하다 2010년에 퇴임하게 됐다. 28년간 강단에 서온 그는 학술활동으로 독일어로 출판한 두권의 저서를 비롯해 ‘한국경제의 대전환과 지역개발’ 등 44편의 학술 논문 및 다수의 저서를 저술·번역한바 있다. 또 한국경제학회 이사, 한국교통학회 이사, 한독경상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충남대학교 내 기획실 및 신용협동조합, 평화안보대학원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기획연구실장, 신용협동조합 이사장, 평화안보대학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전국 국립대학 초대 기획실장 협의회 회장직을 수행해 국립대학들의 체제 변화를 선도해 왔다.

 

인성을 교육하는 ‘교수’

“대학은 순수하게 전문적인 지식만을 교육하는 곳이 아닙니다. 인생과 삶에 대한 확고한 길잡이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죠. 최근 학벌과 학연 등에 대한 잘못된 사례로 인해 대학교에 대한 인식이 잘못 잡혀가고 있는 듯 합니다.”


이 교수는 학생들을 지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으로 인성을 손꼽았다. ‘인성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일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전문분야를 공부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갖춰야할 기본 소양이 많이 부족한 시점에서 오히려 부각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명문대 진학만을 위해 인성교육에 대해서는 소홀히 여기는 추세”라며 “대학교에서 전문교육과정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에 따르는 개인 소양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정규교육과정을 밟아온 시간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가의 지역균형발전과 이에 연관된 대전충남지역의 발전에 큰 관심을 갖고 대외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사회활동을 전개해 왔다. 국무총리 산하 서해안개발추진협의회 위원 및 국가 교통위원, 신행정수도건설 추진기획단 자문위원, 한국철도 시설공사 자문위원 등과 같은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자문도 했다.
또한 대전시 및 충청남도 도시계획 및 종합건설 심의 위원, 대전도시개발공사 이사 및 감사, 엑스포기념재단 이사로 봉사했다.
특히 이러한 지역정책을 선도하기 위해 사단법인 대전충남발전연구원 원장 직을 수행하면서 정책개발에 헌신했다.


이 교수는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에 관심을 갖고 대전의제21추진협의회 상임대표를 맡았으며 유엔의 지구환경회의 권고로 이뤄진 전 지구적인 가난퇴치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운동으로 신협 중앙회 전문이사 겸 대표감사로 사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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