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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4-18 13:5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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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농사 참 잘됐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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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린 결실 2~3시간 만에 내동댕이
농민들 “수확량 20%도 못 미칠 것”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지난 28일 한반도 전역을 휩쓸고 가면서 특히 과수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사과와 배 농가에서 낙과로 인한 피해가 잇따랐다.
볼라벤의 초강풍에 과수농가 총 589농가 중 453농가,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농가가 피해를 입었다. 과수농가 피해 면적이 50%를 웃도는 가운데 수확량은 20%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농민들은 우려했다. 석문면 통정리에서 광진농원을 운영 중인 인치연 씨는 “출하를 일주일 남겨두고 한 해 농사를 다 망쳤다”며 “사과가 150개 씩 달렸던 나무에 적게는 4~5개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배의 경우 수분이 많고 무거워 낙과율이 크고, 떨어지지 않은 배도 포장에 쌓여 있어 매달린 채로 손상을 입었는지 알 길이 없다. 포도는 낙과하지 않고 알이 터져버리는 열과현상이 나타난다.
농민들의 땀방울이 나무에 주렁주렁 맺혀 익어가고 있었지만, 삽시간에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자 과실들이 땅바닥에서 나뒹굴었다. 오후 2시에서 4시, 일 년 내내 고생한 결실이 단 두 시간 만에 내동댕이쳐졌다. 올해 과일 농사가 유난히도 잘 되고 있어 흐뭇해했다.

 

면천면 삼웅리 안동농장 강희태 씨

보험금, 수익금에 비하면 보잘 것 없어

“아이고, 사과 다 떨어져유. 나무 다 넘어 가네!! 지금 난리 났슈!!”
볼라벤이 서해 중부지방을 지나고 있던 28일 오후,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6000평 면적에서 부사(후지)를 주로 재배하던 강희태 씨의 과수원 사과나무에서 익어가던 사과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일렬로 세워진 20여 그루의 나무가 일제히 45° 각도로 넘어갔다.
바닥에 뒹구는 사과를 보며 강 씨는 “수확할 때 인건비 아끼게 됐구먼”이라며 허탈해 했다. 나무에 달린 사과보다 바닥에 떨어진 사과가 더 많았다. 수확량이 20%에도 미치지 못 할 거라고 예상했다. 보험은 들어 놨지만 기대할 만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보험금 받으면 뭐해, 정성들여 기른 것 내다 파는 게 보람 아니겄어요?”             

 

석문면 통정리 광진농원 인치연 씨

“농사 의욕상실, 자살심정 알 것 같아”

전국에서 품질우수상을 받고, 청와대까지 들어간다는 인치연 씨 댁의 사과(홍옥)는 출하를 일주일 남겨두고 있었다.
눈 뜨면 하루 종일 사과나무에 물 주고 거름 주면서 보살피다보니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어떻게 생겼는지 욀 정도였다. 그렇게 애착을 갖고 기르던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가 하루가 다르게 발그레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농사 참 잘됐구나’라고 생각했다.
“사과나무가 뽑히게 생긴 걸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어, 사람 목숨이고 뭐고 밖에 나와서 그저 붙잡고 어루만질 수밖에 없었어요.”
태풍이 지나며 떨어진 사과를 보면서 그는 “왜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삶의 의욕이 뚝 떨어졌다. 한 해 농사 열심히 지어봤자 돌아오는 건 야속한 결과 뿐이었다. 그는 “사과를 팔아서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밀린 농약값도 지불해야 하는데 외려 빚더미에 앉게 생겼다”며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합덕읍 대전리 내동농원 전현주 씨

다시 일어설 정도는 보상해 줘야“

바닥에서 썩어가는 사과들 쳐다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와서 나와 보지도 않았어요.”
태풍이 완전히 지나간 지 24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바닥에 떨어진 사과들은 이미 부패해 가고 있었다. 뭉그러진 사과에 파리와 나방 등 곤충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사과나무까지 병충해를 입을 수 있다.
귀농 10년 째인 전현주 씨는 그나마 애처롭게 달린 사과 중 일부를 나무에서 떼어냈다. 바람에 서로 부딪혀 멍들거나 상처투성이어서 다른 사과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상품가치가 없는 사과가 태반이어서 제대로 출하될 수 있는 사과는 몇 안 될 거라고 예상했다.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어요. 자연재해를 인간이 막을 수는 없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 농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정도는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씨는 “기온변화로 해마다 기록적인 태풍이 발생하는데 이제는 정말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송악읍 청금리 서해농장 이인행 씨

공터에 파묻는 수 밖에 없어

9월 말 쯤 출하 예정이었던 이인행 씨가 기른 배들 역시 태풍에 낙과했다. 2000평 남짓되는 바닥에 나뒹구는 과실을 닭이 쪼고 있었다.
이 씨는 “배는 수분이 많아 무거워서 잘 떨어져요. 낙과하지 않고 나무에 붙어있는 배들은 씨알이 작은 것뿐이에요. 붙어 있다 하더라도 바람에 꼭지가 흔들려 생육이 좋을 리 없지요. 이번 농사 참 잘됐었는데….”
배는 사과와 다르게 포장에 쌓인 채로 나무에서 자라기 때문에 낙과하지 않았더라도 일일이 다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장을 뜯어봐야 부딪쳐 상처가 났는지 알 수 있다. 배는 사과보다 출하시기가 다소 늦어 아직까지 맛이 덜 든 상태. 때문에 주스공장에서도 낙과한 배는 잘 사가려 하지 않는단다.
농업기술센터에서 28일 3시 무렵 표본조사를 했을 당시만 해도 50% 낙과한 것으로 나왔지만 그 이후로 20%는 더 떨어졌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이 씨는 “떨어진 배들을 공터에 파묻을 수밖에 없다”며 “묻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 걱정”이라고 했다.    

 

순성면 본1리 가화포도단지 이종선 씨

보상도 안 되는 보험, 들어서 뭐해

탐스럽게 영글었던 포도송이가 알알이 터져버렸다. 순성 본리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터진 알들을 솎아 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종선 씨 댁 농장 약 3500평 중에서 1500평 정도의 포도가 손상됐다. 가화포도단지 내 7만여평 14농가 중 대부분이 피해를 입었다. 이제 다 익어서 내다 팔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태풍이나 호우를 만났을 때 포도는 사과나 배처럼 낙과하지 않고 알이 터져버리는 게 특징이다. 포도넝쿨 때문에 철 구조물을 땅에 박아 놓아서 나무가 쓰러질 일도 없다.
이 씨는 “낙과하거나 나무가 쓰러지지 않으면 보상을 받을 수 없는데 누가 돈 들여 보험을 들겠냐”며 “과수 농가의 특징에 따라 보험적용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포도주스 공장에 물어봤어요. 포도알만 30kg정도 들어가는 콘테이너 박스하나 당 6천원을 달라더군요. 5kg짜리 1박스에 1만2천원~1만5천원, 엑기스용 포도 10kg에 1만2천원에 팔았는데 그 값을 주고 어떻게 팔아요.” 알알이 터져버린 포도알처럼 그의 속도 터질 것만 같다.     

 

인터뷰 이철환 당진시장

“장관과 상처난 과실 보험 적용 약속”

이철환 시장은 지난 29일 순성면 아찬리 일대 피해 농가를 방문한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농민들의 건의사항을 전달했다.
이 시장은 “태풍에 떨어진 사과의 경우 능금조합에서 전량 매수할 것과 떨어지지 않은 과일들 중 바람에 부딪혀 상처 난 과실에 대해서도 보험을 적용할 것을 약속 받았다”고 말했다.
당진시는 30일 재해조사를 마친 후 곧장 소방, 경찰, 민간봉사단체를 동원해 현장에 인력지원을 보냈으며 향후 공공기관과 단체를 대상으로 출하를 앞둔 사과들 중 낙과한 과실에 대해 ‘사과 한 상자 팔아주기 운동’을 펼칠 예정이다.
이철환 시장은 “2010년 태풍 곤파스 이후 과수농가의 보험가입율이 높아졌다”며 “과수농가의 피해가 큰 가운데 농협 등 조합이 농민의 아픔을 달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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