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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을 만나다 17 (주)성원산업 인치완 대표이사
유년시절 꿈을 키우던 고향, 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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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의 도전을 거듭한 삶
탤런트 아들과 함께 ‘남자의 자격’ 출연 중

[편집자주]  지역에 교육기관이 부족한 탓에 학창 시절부터 타지 생활을 시작해 오랜 기간 고향을 떠나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출향인들이 밀집된 지역을 찾아가 그들이 활동하는 모습과 각 분야에서 성공한 출향인들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인치완 대표이사는
 - 1955년 면천면 송학리 출생
 - 죽동초 10회 졸업
 - 면천중 24회 졸업
 - 현 (주)성원산업 대표이사
 - 현 면천중학교 총동문골프회 회장
 - 배우 인교진 씨 아버지
 -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패밀리
                             합창단원으로 출연 중

포털사이트에서 배우 ‘인교진’을 검색하면 ‘서우 남친’과 함께 ‘인교진 아버지’가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인교진 아버지, 인치완 (주)성원산업 대표는 일요일 저녁 간판 프로그램인 KBS ‘남자의 자격’에 아들 인교진 씨와 함께 패밀리 합창단원으로 출연 중이다.  ‘추석 콩쿨대회’라는 게 있던 시절, “노래로 당진을 휩쓸었다”는 그가 아주 오래 전에 접었던 가수라는 꿈을 40여 년이 지나서 이루고 있다. KBS 노래자랑에서 우승까지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재능이 많은 그를 아들이 빼닮아 연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마을의 큰 인물이 내가 되지 않을까’
인치완 대표는 면천면 송학리에서 7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송학리는 아미산과 다불산, 몽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이 그 지역이 명당이라면서 ‘인물이 날 것이다’라고 말씀하곤 했어요. 어린 마음에 ‘그게 혹시 내가 되진 않을까’하는 꿈을 꾸곤 했지요.”
당시 인 대표의 아버지는 아미산의 광산에서 일을 했고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시골에서는 부족함 없이 자란 것 같다”고 기억했다. “결혼 후 딱 2만원을 받아서 나왔다”는 인치완 대표는 사글세방에서부터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도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말고 내 힘으로 가보자’고 생각했다.
성광그룹에서 일을 할 땐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일 욕심도, 야망도 큰 그는 항상 1등이 되고 싶었다. 결국 38살 이른 나이에 임원 자리에까지 올랐다.

성광그룹 임원직 박차고 나와
그러나 임원이 된지 9개월 만에 그는 회사를 그만 뒀다.
“사람들이 전부 미쳤다고 했어요. 그 좋은 회사, 그 좋은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왔으니까…. 그런데 당시 저는 하루라도 더 젊었을 때 더 큰 일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성광그룹에서 나와 회사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로서 경영을 하기 시작한 게 1993년도였다. 회사는 나날이 성장했고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러다가 1997년,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대다수의 기업이 휘청였던 ‘IMF 사태’를 그도 피할 수 없었다.
인 대표는 “그 때 당시에 15억 부도를 맞았다”며 “관련업체, 거래처 모두 줄줄이 도산하는 판에 도저히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업계 1등 기업, 연매출 200억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는 결코 절망하거나 주눅 들지 않았단다. 인생을 배우는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젊음’이라는 한밑천만 가지고 다시 도전했다.
“혹독하게 인생과 경영을 배우는 계기가 됐어요. 그동안 튼실한 기업 몇 곳과 안전거래만 추구해 왔는데 그게 부도의 원인이 돼버린 거죠. 그 때 이후로 여러 다양한 기업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경영철학을 바꿨고, 지금은 건실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결국 전화위복이 된 것이지요.”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PP사 업계에서 1등 기업으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현재 그의 회사는 연간 2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신용’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와 믿음을 줄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죠. 그래야 어려움에 빠졌을 때 진정으로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을 수 있어요.”
암흑과 같은 시기를 겪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인 대표는 인간관계를 강조했다. 요즘도 힘들 때면 고향에 훌쩍 다녀온다는 그는 아미산 정기를 받으며 꿈을 키우던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힘을 받는다. 인치완 대표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의 바탕에는 고향, 당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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