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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을 만나다 23]
초락도리 소년, 맞춤양복 리더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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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호 한국맞춤양복협회장

박인호 (사)한국맞춤양복협회 회장은

 - 초락초, 석문중 졸업, 한국방송통신대 중퇴
 - 한국능력개발원 심사위원
 - 아시아 맞춤양복경진대회 심사위원
 - (사)한국맞춤양복협회 회장 (현)
 - (사)한국남성패션문화협회 회장 (현)
 -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상임부회장 (현)
 - 에메랄드 테일러 운영

농촌 소년의 상경

한국 맞춤양복을 이끄는 리더가 당진출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사단법인 한국맞춤양복협회 박인호 회장은 석문면 초락도리 출신(1958년생)으로 초락초등학교와 석문중학교를 졸업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또래의 농촌 아이들처럼 농번기에는 농사일을 돕고 소를 기르는 일에 바빴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의 친적과 지인의 소개로 상경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당시 의류모델로 일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잠시 모델 활동을 하기도 했다. 잡일을 도맡아하면서 일을 하다가 옷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복장학원을 다니게 됐다. 하숙생활을 하면서 기술을 배우던 시절이었다. 기술을 배우며 조수로 일할 때는 하숙비와 학원비 정도만 받는 정도였기에 고생도 많았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좋은 선배들을 만나면서 빠른 시일 내에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여성복 관련 일도 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곧 남성 맞춤양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군 제대 후에도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패션쇼를 찾아다니면서 선진국의 패션을 공부하며 역량을 키워왔다. 양복이 일본을 통해 전해진 탓에 각종 용어에는 일본어가 많았다. 점심시간에 일본어 학원을 다니는 등 틈틈이 공부하며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돈을 버는 것 보다, 선진 기술을 배우는데 돈을 투자했습니다. 열심히 일 해왔기에 인정을 받고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맞춤양복에 몸을 담은 지 30여년. 1991년 에메랄드 테일러(양복점)의 문을 열었고, 국회의원부터 연예인 등 수많은 이들이 그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 맞춤양복을 찾는다.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금하빌딩에 위치한 ‘에메랄드 테일러’에는 그가 손수 만든 맞춤양복을 애용하는 수많은 유명인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인터뷰를 하는 평일에도 에메랄드 테일러를 찾는 발길이 이어졌다. 직원도 여럿 두고 있지만, 여전히 직접 수작업으로 맞춤양복을 선보이는 박인호 회장의 장인정신 때문이 아닐까.

 

 

“부드럽고 편한 옷이 가장 좋은 옷”

지난 2월 박인호 씨는 사단법인 한국맞춤협회, 한국남성패션문화협회 통합회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세계주문양복연맹의 회장이 되어 세계 맞춤양복의 리더가 될 더 큰 꿈을 갖고 있다.
“고객들은 직업이 다 다른데, 인맥을 늘려나가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일을 좋아하다보니 많은 분들이 계속 찾으시는 것 같아요. 세계연맹 회장의 꿈도 갖고 있습니다.”

30여년 동안 맞춤양복에 몸 담아온 그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옷은 어떤 옷 일까.
“맞춤 양복은 몸에 잘 맞는 것은 기본입니다. 여기에 안 입은 것처럼 편하고 가볍게 만들고, 실루엣까지 살린다면 더 좋죠. 무엇보다 부드럽고 편한 옷이 가장 좋은 옷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꿈 성취”

당진에는 부모님의 묘소도 있고, 초락도리에는 친척들도 거주하고 있어 종종 고향을 찾는다. 초락도리에서 석문중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던 시절에 비해 당진은 많이도 변했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어른이 돼 찾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어린 시절 봤을 때보다 작아진 것처럼 보였어요. 건물도 운동장도, 마치 어렸을 때는 컸는데 지금은 작아진 것처럼 느끼죠. 당진은 많이 변했어요. 갈 때마다 모습이 바뀐 지역도 있어 길을 못 찾을 때도 있었죠.”

그는 출향인 모임인 당진포럼(회장 이충호)의 멤버이기도 하다.
“고향 분들을 자주 만나려고 합니다. 당진에는 자주 못가도 출향인 여러분을 통해 소식을 많이 들어요. 아무래도 저 역시 고향에 대한 애착이 큰 것 같습니다.”

고향의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덧붙였다.
“패션 디자이너나 의류업계에 꿈을 가진 후배들이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오 아울렛의 홍성열 회장님과 같이 크게 성공하신 분도 있지요. 열심히 공부하고 좋아하는 일에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입니다.”                    

[편집자주]  지역에 교육기관이 부족한 탓에 학창 시절부터 타지 생활을 시작해 오랜 기간 고향을 떠나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출향인들이 밀집된 지역을 찾아가 그들이 활동하는 모습과 각 분야에서 성공한 출향인들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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