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아울렛’ 홍성열 회장은 당진에서도 정미면 끝자락인 산성리가 고향이다.
가난했던 시골 소년이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울렛 매장 CEO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편물기 네 대로 시작한 니트 사업
정미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중학생이 되던 해 부모님의 권유로 서산으로 유학을 갔다. 어려웠던 시절, 평범한 농부였던 부모님이 아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홍 회장은 13살부터 친척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기도 하고, 자취생활을 하며 언제부터인가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가난한 집안 살림에 공부와 일을 병행하기 힘들었던 그는 서울로 올라와 의류사업에 뛰어들었다.
홍 회장은 편물기(뜨개틀, 옷이나 소품을 짜는 기계) 사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패션사업을 시작했다.
“1980년에 형제들에게 빌린 200만원으로 편물기 네 대를 샀어요. 그때부터 니트 사업을 시작했죠. 당시만 해도 국내 대부분의 의류업체는 외국 바이어가 시키는 대로 제품을 생산해 냈는데 저는 시장조사부터 원사 선택, 디자인, 생산에 수출까지 모든 걸 혼자서 감당했습니다.”
토종 니트 브랜드 ‘까르뜨니트’
그의 피땀 어린 노력과 열정으로 5년 만에 니트 브랜드 ‘까르뜨니트’를 창립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만든 옷을 입는 고객이었고, 항상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연구를 거듭했다. 따뜻하고 편안해서 사람들이 니트를 즐겨 입지만 주로 겨울에 입는 옷으로 인식돼 있었다. 그는 생각을 바꿔 니트를 사계절 내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결과 홍 회장의 제품에 대해 일본 바이어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일본 주요 백화점에 입점하기도 했다. 또 국내 니트시장에서도 50%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위기도 여러 차례 찾아왔다. 특히 1987년 몰아친 태풍 ‘셀마’의 영향으로 큰 수해를 입었다. 수출해야 할 의류가 모두 젖어 버린 상황에서 일본에 납품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홍 회장은 “정해진 기한에 납품해야 하는데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으니까요. 그 길로 당장 일본 거래처로 찾아가 모든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했습니다. 진심이 전해졌는지 이후로도 꾸준히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지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때 일본 바이어들로부터 얻은 별명이 ‘마리오’였다. 그가 어려움과 난관을 몸으로 부딪히며 강단 있게 버텨내는 뚝심이 게임 캐릭터 ‘마리오’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로 수년간 경제침체가 계속될 때에도 그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보고 ‘마리오아울렛’을 창립했다.
구로공단에 ‘마리오아울렛’ 오픈
그가 니트 사업을 하며 해외 시장조사를 나갔을 때 처음 아울렛 매장이라는 것을 접하게 됐다. 아울렛은 패션산업의 고질적 문제인 재고를 처리하기에 그만이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브랜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홍 회장은 IMF를 겪으며 대부분의 공단이 문을 닫으면서 황폐화된 구로공단(현 가산디지털단지)을 도심과 접근성이 좋은 상권으로 생각하고 2001년 마리오아울렛을 문을 열었다.
현재 마리오아울렛은 지난 9월 제3관을 오픈, 4만평 영업면적에 500여개의 브랜드가 입점해 있는 최고의 아울렛으로 성장했다. 또한 아울렛 업계에서는 최초로 리빙관, 명품관, 코스메틱(화장품) 아울렛 등 파격적인 구성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내방고객 9천만명을 돌파한 마리오아울렛은 최근 5년 동안 50% 이상 씩 높은 매출신장을 보이며 내년 2013년에는 연 매출 5천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숱한 시행착오가 성공을 이끌어
홍성열 회장은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와서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많은 시행착오와 크고 작은 실패들을 겪어야만 진정한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바쁜 업무로 고향에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그에게 언제나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주는 곳이 바로 고향 당진이다. 고향을 떠나기 전, 이곳에서 뛰놀던 기억에 2010년에는 정미초등학교 후배들을 본사로 초청해 도시문화 체험학습 등 견학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고향이 점점 발전하고 있는 모습에 자부심과 기쁨을 느낍니다. 최대한 당진이 갖고 있는 본연의 모습과 특색을 잃지 말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