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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2024-03-28 10:4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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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18대 대선 정국이 막바지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 그런데 많은 유권자들은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할 설레임이나 기대감보다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사실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릴만하다. 내년부터는 대학등록금 걱정안해도 되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고, 사교육비의 사슬에서 벗어날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도 해소될 것이고, 휴전선과 NLL은 철통방어망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후보자들은 다수의 유권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내세워야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 따라서 무수히 많은 공약을 제시해야한다. 청년층을 위해, 노인을 위해, 임산부를 위해, 실직자를 위해, 호남사람을 위해, 영남사람을 위해… 특히 올해 선거처럼 후보자간 지지율 격차가 미세한 선거판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약속이라도 일단 뱉어놓아 한 표라도 더 늘리려 안간힘을 쓴다.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절박함에 남발한 약속들은 당연히 지킬 수 없게 된다. 하도 정치인들이 선거 공약을 안 지키니까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선거공약까지 나왔다.

그러나 후보자들이 내세운 대부분의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은 헛공약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유권자는 없을 터이다. 그래도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향한다. 그 많은 공약 중 “내 맘에 드는 공약” 즉 “나에게 이익이 되는 공약” 한 가지 정도는 지켜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물론 자살 소동을 벌이는 등 특정후보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선거유세장 주변에 몰려들어 환호하는 유권자들을 보면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같은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지만 일본이나 중국에 가면 구름관중을 몰고 다닌다는 한류연예인들을 보는 듯하다.

대선정국을 맞아 TV뉴스나 토론 프로그램에 빈번히 등장하는 소위 전문가나 해설자들도 가관이다. 마치 바둑이나 장기판의 훈수 두듯이 판세를 분석해주는데, 그 사람들의 이력을 확인해보니 변변한 논문도 한편 없는 무늬만 ‘정치평론가’들이 수두룩하다. “아! 저러면 안되는데요” “정신차려야합니다” “멋진 골입니다” 같이, 경기이해에 도움보다는 소음공해만 야기하는 자질부족 축구경기 해설자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공정한 선거보도를 다짐한 언론사들의 행태도 짜증스럽다. 지난 3일 열린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캠프해단식 발언을 두고 <조선일보>는 “한발짝도 더 안나간 ‘安의 文지지’”라는 제목을 달았고, <한겨레>는 “안철수 ‘문재인 후보 성원해달라’지지 재확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언론의 요체인 객관성이나 공정성 보다는 자신들의 후보를 당선시키는데 주력하는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던지 관계없이 그 결과는 “상생과 통합” 대신 “갈등과 반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정권이 탄생되어도 유권자들의 실망과 분노가 또다시 범국민적 정치혐오로 전이되고, 정치인들은 서로 네 탓만 하면서 세월을 보낼 것이다. 결국 다음 정권말기가 되면 또 다시 정권심판과 정치쇄신을 구호로 내건 치열한 선거전이 재개될 것이다.

선거에 대한 피로감과 그 후유증이 명백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선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을 생각하면 그래도 지금의 선거가 다행이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국가지도자를 선택하면서 그 방식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짧은 시간 일사분란하게 공산당대표를 선출한 중국과,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가며 치열한 선거전을 치른 미국 중, 과연 어느 나라가 더 평화적이고 안정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 국가를 운영할지는 명백하다.

비록 마음에 드는 후보자가 없더라도, 그들의 공약이 헛공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권자들이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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