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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13.05.24 19:03
  • 호수 962

“착한 우리 막내가 왜 영정 속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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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사고 최연소 사망자 故 남정민 씨 어머니 인명순 씨

“티없이 깨끗한 내 아들 검은 얼굴을 하고 차가운 곳에 누워 있는 아픔을 어찌 설명하겠습니까.”

지난 10일 발생한 현대제철 공장 사망사고 피해자들은 2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었으며 아버지였던 그들. 질식 사고로 피해자들은 운명을 달리했지만 여전히 남은 가족들은 그들을 그리워하며 애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사고 발생 12일차였던 지난 21일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명순(전남 순천·52) 씨는 아들의 영정 앞에 음료수며 군것질 거리를 놓고 시든 꽃을 정리하고 있었다.
인명순 씨는 현대제철 사망사고 피해자 중 가장 젊은 고 남정민(25) 씨 모친이다. 남 씨는 1989년 생으로 대학 졸업을 앞둔 지난 2012년 1월 한국내화에 입사했다.

 

사고 새벽, 불길한 전화 한 통

“속 한 번 썩인 적 없이 착한 아들이었어요. 지난달 29일에는 휴가라고 집에 와서 찹쌀 도너츠며 호떡이며 먹고 싶다는 것을 직접 해 먹이고 3일날 올라갔어요. 그 후 꼭 일주일만에 사고가 난 거죠.”

사고 당일 새벽 4시 4분. 인명순 씨 휴대전화가 울렸다. 잠결에 벨소리를 껐지만 이내 다시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당진입니다.”
아들 정민 씨를 담당하던 사수의 전화였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건네고 신경이 곤두섰다.

“예. 예. 예. 예” 남편은 짧은 대답만 반복하다 전화를 끊었다.
“여보, 옷 챙겨 입어. 당진 가자.”
급한 마음에 남편 혈압약을 챙기고 자주 입던 옷을 입으니 남편이 말렸다. 밝은 옷 말고 차분한 옷을 입으라고 했다. 그리고 본인은 양복을 달라고 했다. “양복을 왜 입어?”라고 묻자 “나는 남자잖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애통한 현실 받아들이지 못해

당진으로 올라오는 고속도로는 빗속이었다. 남편은 운전하는 내내 울음을 삼키지 못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쳤나보다’라는 생각만 했고 차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안 좋은 예감이 사실이 될 것 같아서였다.

영원처럼 긴 4시간을 보내고 당진종합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입구로 들어가려는데 남편이 장례식장 쪽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슬픔을 직감했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닥쳤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병원은 여긴데 왜 그쪽으로 가. 이쪽으로 와! 다쳤으니까 병원가야지!” 울부짖으며 현실을 거부했다. 내 아들. 꽃다운 내 아들이 다쳤다고 해도 가슴 아픈데 죽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큰 아들과 남편이 진정하라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다. 일은 벌어졌고 엄마는 아들의 어떤 일, 어떤 모습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진에 도착한지 2시간이 넘어서 아들을 보러 영안실에 내려갔다.
차가운 냉동고에는 까맣게 안색히 변한 아들이 누워있었다. 질식에 의해 검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잠자듯 편한 얼굴이었다.

“부모 잘못 만나서 타지에서 고생한 것도 미안한데 이렇게 되면 엄마는 미안해서 어떡하니….”
소식을 들은 지인들과 아들의 친구들이 분향소에 왔다. 착한 내 아들은 영정 사진 속에 있다. 아들을 조문 온 푸른 청춘들이 잔뜩 어깨가 쳐져서 살아있는 본인들이 죄인인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인명순 씨는 “그러지 말고 인사 잘해서 보내자”고 다독였다. 고마웠다. 아들을 보내는 마지막 길에 함께 해준 이들이다.

 

아들과 나눈 문자 여전히 보관

엄마의 휴대전화에는 아들과 나눈 마지막 대화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5월 4일이 마지막이다. 출근 준비 잘하고 있냐는 엄마의 물음에 아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교대 근무가 이어지기 때문에 언제가 출근이고 퇴근인지 알 수 없어 혹시 야근을 마치고 자던 잠을 깰까 조심스럽게 연락해 왔다.  
아들 휴대전화에는 친구들의 문자메세지가 들어왔다. 엄마는 아들의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답장을 하며 서로 위로했다.

“나보다 더 좋은 부모 만났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세상의 찌든 때 그만 보라고 하늘이 데려갔나 봐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진정해 보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여전히 현대제철, 한국내화 측과 협의할 문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아까운 내 아들이 죽었는데 현대제철은 여태 미루다가 사고 발생 후 12일 째 현대제철 정문 옆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어요. 나는 엄마니까 힘을 내서 싸울겁니다. 이 긴 싸움이 끝나면 우리 아들을 지리산 근처에 곱게 모셔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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