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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 4] 고대면 당진포1리
당진지명의 유래가 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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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와 교역 활발했던 마을
영전황토마을 농촌체험 활발

 

 

당진 지명의 유래가 된 마을이 있다. 바로 당진포리가 그곳이다. 중국 산둥반도와 매우 가까운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일찍이 당나라와 교역이 활발했던 지역으로 ‘당나라와 교역한 나루(포구)’라는 뜻에서 당나루, 즉 ‘당진포(唐津浦)’라 불렸다. 해안가 근처에 당진포영(領, 군대)이 주둔해 있었는데 이 앞에 위치한 마을이어서 영전(領前)이라 불렸다.

“어렸을 때 만해도 ‘영 앞’이라는 말을 쓰곤 했었어요. 친구들을 만날 때 ‘영 앞에서 만나자’라고 말했죠.” (최종웅 이장)
당진포1리는 몇 해 전 농촌체험마을을 조성하기 시작하면서 ‘영전황토마을’로 도시민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옥토에서 생산한 질좋은 농산물

당진포1리의 땅은 그야말로 비옥한 황토다. 골짜기마다 바닷물이 드나들던 퇴적지형이다 보니 대대로 하늘로부터 옥토를 선물받았다. 이곳에서 나는 농산물은 당도가 높고 품질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수도작이 농업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특히 황토고구마가 유명하다. 각 농가마다 고정 소비자가 있어 황토고구마는 대부분 직거래로 판매된다. 다른 곳에서 생산된 고구마 보다 2~3배 비싸게 팔고 있지만 수확하는 족족 날개 돋친 듯 사라지는 효자 작물이란다.

마을에서는 고구마뿐만 아니라 황토배, 황토감자, 홍고추, 깨 등 다양한 작물이 황토에서 자란다.
최종웅 이장은 “도시 소비자들이 우리마을의 농산물을 믿고 인정해 주고 있다”며 “당진포1리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이용한 참기름이나 고춧가루 등 가공식품에 대한 요구도 있어 설비도 갖춰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당진포1리는 삼성과 한강미디어고등학교, 성북구 정릉4동 등 10여개의 회사, 학교, 동네와 자매결연을 맺어 농촌체험도 활발하다. 도시민들이 흔히 할 수 없는 고구마캐기나 배수확 등 농작물 체험과 황토염색, 짚공예, 손두부 만들기 등 체험거리가 다양하다. 농촌휴양마을로 지정된 것은 물론 정보화마을, 팜스테이 등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나가고 있다.

 

 

방조제 막기 전 염전도 있었어

마을입구부터 펼쳐진 독특한 마을 풍경은 당진포1리의 또 다른 재미다. 한국 대부분의 마을은 산 아래 가옥들이 지어져 있고 그 앞을 도로가 지나는 모양새인데 당진포1리에서는 마을길이 가옥들 보다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도로가 산 능선을 타고 이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 어렸을 땐 길이 질퍽거려 다니기가 상당히 어려웠슈. 땅이 녹기 시작하는 봄이 오거나 장마철 비라도 내리는 날엔 황토에 신발이 빠지는 게 다반사였지유.”(김혜재 마을 총무)

방조제를 막기 전엔 골짜기에 바닷물이 밀려들어 오면 숭어와 망둥어가 많이 잡혔었다. 그물을 이용하지 않고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물고기가 많았다. 또 진명재단에서 운영하는 염전도 있었다. 당시엔 섬이었던 개구리섬, 뱀섬으로 소풍을 가곤 했었다고.
최 이장은 “섬 모양새가 개구리를 뱀이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생겼는데 뱀섬 뒤에 황새산이 있어 ‘개구리가 잡아 먹히지 않고 살아있다’고 주민들이 말해왔다”고 말했다.

방조제 마을의 옛 풍경이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당진포1리의 변화는 느리다. 마을주민들은 계속되는 고령화로 농촌의 젊은 일손이 부족한 게 걱정거리다. 하지만 최근에는 귀촌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
“앞으로도 당진의 좋은 농산물을 알리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더욱 가까워 질 수 있도록 주민들과 함께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주민들을 위한 생활복지사업도 계속해서 펼쳐나가야죠.”

 

우리마을 주민대표

“좋은 마을환경 꾸준히 유지”

 

(왼쪽부터) 황금성 노인회장, 김혜재 마을총무, 이은순 부녀회장, 최종웅 이장

 

당진포1리는 농촌체험마을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마을이다. 1사1촌 등 기업, 학교, 동네와 결연을 맺어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직거래로 팔기도 하고,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도시민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최 이장은 “개발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전형적인 농업기반 마을이라 좋은 환경을 꾸준히 유지해 올 수 있었다”며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계속돼 우려스러웠지만 최근 귀촌인이 늘고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에요. 제가 시집올 당시만 해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아주 오지였어요. 버스도 하루에 세 번 밖에 없었죠. 그래도 지금은 사람들에게 마을이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좋아요.”(이은순 부녀회장)

<편집자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당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다가 메워져 들판이 되고, 산이 깎인 자리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전통마을의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도 함께 변해간다. 이에 본지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을 통해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이 전통을 이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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