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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 9] 정미면 덕마리
말 형상 닮은 덕(德)이 으뜸인 마을

전형적인 농촌마을…신성대 개교하며 인구증가
금모래 빛나던 역내천 “물 걱정 없이 살아”
임아연l승인2013.08.09 20:15l(9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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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을회관 안에서 바라본 마을풍경

 

당진지역에서도 정미면은 조용하고 순박한 마을이다. 특히 덕마리는 산들이 마을 주변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데다 푸른빛으로 너울거리는 들판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오랜 시간 터를 닦으며 살아온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어서 요즘 같은 농한기에는 마을회관 앞 정자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낸다.

 

   
▲ 2. 마을회관 앞 정자에 모여있는 주민들

굿하고 제사 지내던 말목 

덕마리는 원래 서산시(당시 서산군) 땅이었으나 1957년 당진시(당시 당진군)으로 편입된 곳으로 마을이름의 유래가 된 곳은 말목과 덕실이라는 곳이다. 지금의 신덕교회 앞을 일컫는 이곳은 지형이 말목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해서 말목이라 이름 붙었단다. 여기에는 소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었지만 지금은 도로포장과 개발로 전부 없어졌다. 말목에 위치한 신덕교회도 꽤 오랫동안 마을의 역사를 함께한 교회다. 약 40년 가까이 한 자리에서 뿌리내린 지역의 터주대감이다.
“교회 앞에 큰 팽나무도 있었지. 아주 오래된 고목이었어. 이 나무에 서낭당을 만들어 정월에 굿도 하고, 마을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제사도 지냈지.”
마을 언덕어귀 위치해 있어 사람들이 이 앞을 지나다닐 때 마다 자손이 잘 되라고 기원하는 등 소원을 빌던 곳이다. 하지만 어디나 마찬가지이듯 서낭당은 동네 아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주민들은 2반과 3반을 통틀어 덕실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말 잔등에 덕석을 입힌 듯한 지형이라는 설과 덕이 으뜸된다는 의미도 있다. 한편 문헌에 의하면 덕마리에는 살강보 안 쪽에 위치해 있어 이름 붙은 ‘보안’ 마을이 있다고 전해진다. 신성대 본관이 자리 잡은 곳은 덕뱅이라 불렀고 이 부근에 옻샘이라는 작은 샘이 하나 있었다.

  

   
▲ 3. 말목에 위치한 버스정류장

 

목욕하고 고기 잡던 역내천

덕마리는 물 걱정이 없는 마을 중 하나로 주민들은 “참 살기 좋다”고 입을 모은다. 마을 안쪽에 덕마리 저수지가 있고, 역내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김명환 노인회장은 “옛날에는 역내천변에 해수욕장 뺨치는 하얀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면서 “물놀이하기에 제격이었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어렸을 때만해도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이면 냇가에서 목욕하는 사람, 물놀이 하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또한 장어, 가물치 등 잡히는 물고기도 많았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제작년까지 상수도 보호지역이었는데, 2년 전 해제됐다고 한다. “지금은 아무도 이곳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람이 없지. 하천도 변했지만, 마을에 아이들도 없고….”

 

   
▲ 4. 덕마리에 자리한 신성대 캠퍼스

 

쓰레기 투기로 주민들 골머리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지만 덕마리의 인구는 줄지 않았다. 1995년 신성대가 개교하면서 학생들과 상인들의 유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상 세대 수는 500세대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지역의 원주민들은 63세대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70년대에는 마을 곳곳에 집들이 많아 100세대도 훨씬 넘었다고 기억했다. 원주민은 줄어들고, 이주민은 증가하는 상황이다 보니 주민들의 불만도 있다. 학생들이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거나, 불법투기 하는 경우가 있어 쓰레기를 치우는 게 곤욕스럽다고.이종일 이장은 “동네 쓰레기 문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라며 “마을과 학교의 상생발전을 위해 학교에서 꾸준히 지도 감독하고, 학생들의 의식도 함께 변화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우리마을 주민대표

   
▲ (왼쪽부터) 이종일 이장, 김명환 노인회장, 육정균 지도자, 김도영 부녀회장

 

“젊은이들 함께하며 마을에 활력 생겨”

“우리마을 참 살기 좋지요. 태풍 곤파스 때 빼고는 자연재해도 없었고, 작은 마을 치고 당진과 면천, 고덕, 합덕, 운산까지 버스가 많아 교통이 참 편리하지요.” (이종일 이장)
주민들은 공기 좋고, 물 좋은 덕마리를 자랑했다. 주민들은 소탈하고 순박해서 마을에 시끄러울 일도 없단다.
김명환 노인회장은 “특히 마을 청년들이 단합이 잘 되고 마을 일에 항상 솔선수범 한다”며 “오는 칠월칠석날(양력 8월 13일)에도 청년들이 경로잔치를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육정균 지도자 역시 “일할 마을청년들이 점점 줄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젊은 층 비중이 많은 편”이라면서 “청년들이 어르신들 공경에 앞장서고 마을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당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다가 메워져 들판이 되고, 산이 깎인 자리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전통마을의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도 함께 변해간다. 이에 본지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을 통해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이 전통을 이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

 


임아연  zelkova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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