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업체탐방]읍내동 우리식품 하완철 대표
“쪽잠 자며 성장시킨 식료품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교, 기업, 상점 등에 식품 납품해와
IMF 불황도 이겨낸 부지런함

당진재래시장 내 위치한 우리식품은 1994년도에 식품업계에 뛰어든 하완철 대표가 운영하는 지역업체다. 본래 고대면 성산리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그는 젊은 나이에 농업후계자 및 새마을지도자 등으로 활동할 만큼 촉망 받는 농업인이었다. 당시 70마지기의 논농사를 지어온 그는 김치장사를 시작한 아내가 1년 만에 큰 목돈을 만들어 온 것을 계기로 식품업계에 발을 내딛었다.

8평 남짓한 가게를 얻어 4평은 식품점으로 4평은 살림집으로 개조해 살았다. 아내와 4명의 자녀가 함께 지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아내와 함께 우리식품을 운영하며 당진지역 내 기업체 및 상점 등에 각종 식품을 납품해왔고 당진에서 도성초와 정미초가 급식을 시작함에 따라 각 학교에 급식재료를 납품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당진재래시장에서 도성초까지 비포장 길을 왕복 두 시간에 걸쳐 오가며 급식재료를 납품하는데 고생도 많았지만 이어 고산초, 석문초, 고대초, 합덕고등학교 등이 급식을 시작하면서 우리식품의 거래처가 안정적으로 확보됐다.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던 시기였어요. 농사일 밖에 모르던 농사꾼이 백만 원짜리 수표나 천만 원짜리 수표를 처음 만져 봤으니 얼마나 가슴 떨렸겠어요.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주머니 속 깊이 꽂아 넣고 손에 꼭 쥐고 가게까지 한걸음에 달려왔죠.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네요.”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그는 IMF당시 성장이 주춤했지만 그동안 탄탄하게 지켜온 거래처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많은 기업들과 거래도 했었기에 미수금이 1억 원을 넘을 때도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저녁 6시면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 새벽 5시에나 당진에 도착할 수 있었죠. 당시에는 당진재래시장이 활성화하던 때라 아침부터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해 곧바로 아침장사를 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오전과 오후를 보내고 저녁이 되면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생활을 반복했죠.”

하 대표는 하루에 4시간만 자면서 사업에 몰두했다. 서울에서 물품을 구입하고 잠시 짬을 내어 차안에서 웅크린 채 눈을 붙이는 3시간과 손님이 뜸한 낮 시간 중 1시간의 짧은 수면이 전부였다.
하 대표는 “20여 년이란 세월 동안 이렇게 일해 왔다는 사실을 주변 친구들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며 “개업 초창기 장사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신용이라는 이종사촌의 조언 한마디가 불현 듯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연락처:352-1468
■위치:당진 시장 내. 오륙도 수산에서 당진 시장 내 중앙 길 진입 후 우측.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