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였던 어린 시절
신석현 장군은 학창시절부터 반장이나 학생회장, 응원단장 등 다른 사람을 이끄는 역할을 많이 맡아 왔다. 그런 그가 반장은 커녕 줄반장도 못해본 시기가 초등학교 시절이다.
“엄청난 개구쟁이였죠. 여자애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으면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기도 하고 개구리를 잡아 옷 속에 넣는 장난도 쳤죠. 그러다 보니 여자친구들은 다 날 싫어하고 겁내더라구요. 그래선지 선거에 나가도 뽑아주지 않았어요.”(웃음)
당시 신촌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합덕에서 신촌초등학교까지 먼 거리를 오갔는데 자동차는 언감생심이고 자전거로 통학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걸어서 합덕에서 신촌초까지 오가며 쌓았던 추억은 유년시절 대부분을 차지한단다.
“겨울에 예당 저수지나 합덕방죽이 얼면 거기서 스케이트나 썰매도 탔죠. 나무 신발에 칼날 여러 개를 부착해 만든 스케이트에 비료푸대 썰매로 친구들과 노는게 전부였어요.”
개구쟁이 소년, 늠름한 군인으로
성남고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그는 아버지의 교육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신 장군은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거짓말하지 말고 주변을 배려하라고 가르치셨다”며 “이러한 가르침이 군 생활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관학도로 4년을 마치고 갓 부대로 임관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30사단의 포병장교로 처음 임관했죠. 학도로 있다 소대를 지휘하는 장교가 되다 보니 많이 긴장 되더라구요.”
포병장교로 대위까지 보낸 그는 육군대학 교관과 수기사 대대장과 교육참모, 연대장, 참모장을 거쳐 청와대 군사연구실장을 역임하고 지난 2010년 명예전역했다.
그는 군에 30여년 넘게 몸 담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임관했을 때라고 말한다.
“사관학교를 마치고 소위로 첫 임관했을 때 아버지가 참 기뻐하셨어요. 힘든 군 생활도 기뻐하시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버틸 수 있었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살아생전의 아버지는 제게 등불같은 존재셨어요.”
또한 “군인이 됨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배웠다”며 군에 가는 것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에게 “군 생활을 인생의 낭비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교 학생수 줄어 안타까워
신 장군은 매년 삼우회라는 신촌초 동기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또한 이번 합덕읍 40주년을 맞이해 읍지에 기고도 할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비록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만 합덕에 있었지만 좋은 추억이 담긴 고향이죠. 최근에 모교인 신촌초등학교에 학생 수가 줄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안타까웠어요.”
그는 “합덕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교통의 교차점이고 곡창지대인 만큼 머지않아 물류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 말했다. 또한 “복이란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것처럼 합덕이 발전하기 위해선 지도자들의 안목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약력>
- 신촌초등학교 25회 졸업
- 30사단 포병장교 임관
- 5포병여단 포대장 역임
- 제2포병여단 여단장 역임
- 7군단 교육참모 역임
- 2010년 1월 청와대
군사 연구실장 명예전역
<편집자주> 서울을 가려면 차로 5~6시간을 가야했고 인천은 배를 타고 가야 했던 시절, 교육환경이 열악했던 고향을 떠나 타지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 정착했지만 언제나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출향인들을 만나 지역에 소개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