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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을 만나다8]이두한 대항병원 원장
대장·항문질환 분야의 최고 권위자

“애틋한 고향…어린 시절 기억은 축복”
농부 아버지의 성실함에 열심히 공부
임아연l승인2013.08.30 20:10l(9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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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면 장항리 출신인 이두한 원장은 대장·항문질환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의사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일터인 대항병원은 대장·항문질환을 전문으로 다루는 병원으로, 3년 연속 전문병원 대장암 수술건수 1위를 기록했다. 현재는 소화기내과, 비뇨기과, 유방갑상선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각 분야에 포진된 31명의 전문의료진이 함께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전문병원’

1990년 이두한 원장을 비롯해 외과의사 세 명이 ‘서울외과’라는 이름으로 병원을 개업했다. 당시만 해도 ‘전문병원’이라는 개념이 드물었다. 여러 분야의 의사들이 종합병원의 형태로 병원을 내는 게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대장·항문질환에 특화된 전문병원을 낸다고 했을 때 모두 ‘미친 짓’이라며 손사래를 쳤단다. 하지만 분야를 전문화 하자 환자들은 의사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대학병원보다 접근성이 좋은데다 전문성은 대학병원 못지 않았다. 병원은 해를 거듭하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대장·항문질환 전문병원으로 자리매김했고, 이후  각 분야에 전문화한 병원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대항병원이 우리나라 전문병원의 시대를 연 것이다.

“새로운 분야였기 때문에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아서 오히려 쉬웠던 것일지도 몰라요. 20년 넘게 달려왔는데 힘든 줄도 모르고 살았네요. 아마도 천직인가 봐요.”

그동안 환자들을 숱하게 치료하면서 쌓인 노하우로 이두한 원장의 명성은 자자했다. 무엇보다도 환자들이 병을 잘 고쳐 쾌유했을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는 이 원장의 근간은 뭐니뭐니 해도 고향이다.

팽이·썰매·새총 만들며 놀던 시절

“시골에선 소를 들판에 끌고나가 풀도 뜯기고, 시냇물에서 물고기도 잡고 놀거리가 많았죠. 팽이며, 썰매, 새총을 나무를 깎아 손으로 직접 만들면서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그랬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까 요리조리 궁리하면서 만들었는데, 그때 익힌 손재주가 지금 수술할 때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가 어렸을 때 장항리에는 미군부대가 있었다. 이따금씩 헬리콥터가 날아왔다. ‘투두두두’ 소리가 들리면 헬기를 구경하려고 저 멀리서부터 친구들과 달려가곤 했다.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헬기에서 내리는 조종사가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이 원장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면서 겪은 모든 경험과 추억을 축복이라고 생각한다”며 “50세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정서적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진중학교를 다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누나와 함께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장항리에서 당진까지 비포장도로를 따라 나와, 당진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합덕을 지나 서울을 가야 했던 시절. 고향집에서 출발해 서울 집까지 꼬박 하루가 걸리던 시절이었다.

근면성실 몸소 가르친 아버지

시골 소년의 서울살이는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수줍음이 많은 성격인데 충청도 사투리가 들통 나 웃음거리가 될까봐 말도 못하고 멈칫할 때가 많았다. 가정환경조사서를 쓸 땐 서울 아이들에게는 낯선 ‘농부’라는 아버지의 직업이 괜시리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부를 곧 잘 해 아이들에게 주목받으면서 서서히 서울에서의 삶에 적응해 나갔다. 

이 원장은 “전화 한 통화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다”며 “어린 마음에 부모님 생각, 친구들 생각에 고향을 많이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일찍이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지만 허투루 삶을 살 수가 없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땀 흘려 번 돈으로 어렵사리 공부를 시킨 아버지가 떠올라 더 열심히 공부했다. 외할아버지가 늘 강조하던 재불여근(才不如勤:재능은 근면함만 못하다)이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근면성실함 덕분에 공부도 제법 잘했고, 서울대 의대를 들어가 지금까지 의사로서 삶의 살아가고 있다. 틈틈이 취미생활을 하는데 고등학교 동창들과 밴드를 만들어 함께 연습도 하고 공연도 한다. 드러머인 이 원장은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다.

돌부리 하나에도 서려있는 추억

“고향 생각하면 늘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해요. 처음 서울에 올라 왔을 땐 아무도 당진이라는 곳을 알지 못했죠.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진이 알려져서 좋지만, 한편으론 고향의 옛 모습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해요. 돌부리, 큰 나무, 산골짜기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서려있는데 조금씩 사라져 가네요. 도시화도 좋지만 이웃간 훈훈한 정이나 아름다운 환경은 잘 보존됐으면 좋겠어요.”

>>약력

- 1957년 고대면 장항리 출생
- 고산초 21회 졸업
- 현 고산초 총동문회장
- 현 대항병원 원장
- 서울대 의예과 졸업
- 서울대학교 병원 인턴·레지던트 수료
- 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임상자문의
- 현 대한대장항문학회 항문질환연구회 간사

<편집자주> 서울을 가려면 차로 5~6시간을 가야했고 인천은 배를 타고 가야 했던 시절, 교육환경이 열악했던 고향을 떠나 타지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 정착했지만 언제나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출향인들을 만나 지역에 소개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임아연  zelkova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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