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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 12 당진2동 용연1통
용이 춤추며 하늘로 올라간 마을

물레방아간과 수로가 있었던 ‘용못’
스스로 마을을 꾸리며 살아갔던 주민들
임아연l승인2013.09.06 10:53l(9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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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연1통의 가을 들녘 풍경

용이 솟은 자리라고 전해내려 오는 용연1통은 약 700년 전에 마을이 형성됐다고 전해 내려온다. 마을 전설에 의하면 아미산에서 도를 닦은 용이 현재 용연공동묘지 자리에서 잠시 쉬었다가 산줄기를 타고 ‘용무출산(龍舞出山)’에서 춤을 추며 승천했다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용이 하늘로 오를 때에 한쪽에는 산이 생기고 한쪽에는 연못이 생겼는데, 그 곳은 현재 용연유치원 뒷쪽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허박사민물식당 자리에 ‘용못’이라 부르던 아주 큰 못이 있었다더군. 지금은 개발로 사라졌지만 용이 승천했던 자리라는 기록이 있어.”
용못이 있던 자리에 어르신들이 어렸을 적엔 물레방아간이 있었고, 밭에 물이 흐르던 수로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용연’이라는 마을의 이름도 용못에서 나온 것이라고. 기록에 의하면 날이 심히 가물었을 때, 아미산에서 기우제를 지낸 뒤 제사에 쓰인 돼지머리를 용못 인근에서 굴려서 연못 속으로 잘 들어가면 비가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들었다고 한다.

 

   
▲ 용연천의 현재 모습

 

바닷물이 들어오던 갯벌흔적
용연1통은 모두 10곳의 자연부락으로 이뤄져 있다. 마을을 둘러싸고 산이 많아 골짜기 마다 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데 마을 위쪽에 위치해 있다하여 윗마을, 양지 바른 곳에 있어 양지말, 마을 구석에 우물물이 있어 구석물, 갈대가 많은 갈밭, 글을 배우던 서당골, 땅이 기름져 양석(쌀 2가마, 농업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엔 200평 한 마지기 땅에서 고작 1가마의 쌀만 생산됐었다고 한다)의 쌀이 생산되던 양테기, 바닷물이 들어와 갯벌이었던 군개, 골짜리가 호로병 같이 생겼다는 호롱골, 바닷물고기를 잡기 위해 전통 어구인 살을 매어 두었던 살무리, 서당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서지골로 이뤄져 있다.
동네 어르신들은 “서당골 자리에 지명처럼 용연초등학교가 들어섰고, 폐교된 이후엔 용연유치원이 자리 잡고 있다”며 “마을의 지형도 많이 변화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 마을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땅을 2m만 파면 개흙을 볼 수 있으며, 만조일 때 살무리 등 안마을은 바닷물 깊이가 꽤 깊어 물고기가 많이 잡혔었다. 어르신들은 마을회관 앞을 흐르고 있는 용연천에서 망둥이와 같은 바닷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용연천 물이 얼마나 맑고 좋았었는지 당진읍 아이들의 수영장 같은 곳이었어. 자연부락 곳곳의 이름도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를 않아서 곧 있으면 사라질 판이야.”

 

   
▲ 폐교된 용연초등학교가 현재 용연유치원으로 바뀌어 여전히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다.

용연초·회관건립 주민 손으로
지금 용연저수지는 원래 ‘해창보’라 불렸다. 시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구문래와 해창이라는 장수가 서로 경쟁하다 두 사람이 보와 도랑(똘)을 누가 먼저 만드는지 내기를 했는데 결국엔 비기게 돼 해창이 막은 보라 해서 해창보라 불렸다고. 또한 행정동과 경계지점 능선에는 토성을 축조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용연1통은 ‘각성받이’라 불리듯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지역은 아니다. 10여 개의 다양한 성씨의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지만 주민들의 화합만큼은 여느 지역 못지않은 단합된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1950년대 농업협동조합이 태동하면서 가구 당 1두씩을 출자해 모은 쌀로 구판장을 운영하며 마을 주민들에게 저리로 꿔주고, 한푼 두푼 이자를 모아 마을기금을 키워나갔단다. 이렇게 모은 마을기금으로 동네잔치를 치르는 등 마을주민을 위한 공동 기금으로 사용했다고.
또한 마을회관을 처음 건립할 때도 흙벽돌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아 지었으며, 가뭄이 심할 때에도 지하수 발굴을 주민들 스스로 해결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 초반, 지붕개량 사업을 할 때는 구판장을 통해 마련한 마을 기금으로 모든 주민들에게 쌀 1가마씩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 마을회관의 이전과 용연초등학교 설립도 모두 마을 주민들 손으로 해낸 일이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인천·경기지역에 거주하는 출향인들이 마을주민들과 함께 2년 마다 한 번씩 경로잔치를 벌이고 있다.

<편집자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당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다가 메워져 들판이 되고, 산이 깎인 자리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전통마을의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도 함께 변해간다. 이에 본지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을 통해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이 전통을 이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

 

   
▲ (왼쪽부터) 한영수 노인회장, 원용연 이장, 원영희 전 이장

우리마을 주민대표

“선조들 일군 전통 전해주고 싶어”

“예로부터 마을주민들이 단합이 잘 됐고, 행정에만 의지하지 않고 주민들 스스로 마을을 꾸려나갔지요. 선조들의 그 모습이 우리마을의 아름다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용연1통 마을에 대한 기록이 아주 꼼꼼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은 원영희 전 이장의 역할이 크다. 고향을 떠나본 적 없이 평생을 살아온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르신들이 마을을 이끌어 오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마을공동체를 실현하며 살아온 어르신들의 옛 모습을 잊지 않고, 후대에 전해주고픈 마음에 꾸준히 마을에 대한 기록을 해왔다고.
현재 이장을 맡고 있는 원용연 이장은 “지금까지 지켜온 마을의 모습이 잘 보존돼 인심좋고 살기 편안한 마을로 남아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아연  zelkova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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