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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을 만나다 10 ] KBS 편성본부 이준용 위원시골 소년 언론인의 꿈을 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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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등 여러 프로그램 선보여
“고향에 거름되는 역할 하고파”

>> 약력
- 당진 송산면 도문리 출생, 송산초등학교 졸업, 호서중학교 졸업
- 1985년 KBS 입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석사, KBS 충주방송국장,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
   현 KBS 편성본부 위원

 “당진에 각종 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마구잡이식으로 개발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산업과 문화, 교육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행복한 도시로 균형 있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KBS 편성본부 이준용 위원은 주말을 이용해 당진을 자주 방문한다. 본가를 비롯해 많은 친인척들이 당진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매번 당진을 찾을 때마다 새롭게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며 ‘역동적인 도시’라고 표현한다.
송산면 도문리가 고향인 이 위원은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금이야 산업도로도 만들어지고 각 지역을 잇는 국도도 잘 마련돼 있지만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살며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몇 시간을 걸려 통학해야 했던 시절과 지금의 모습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 위원의 어린 시절 기억과 현재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버스타고, 혹은 걸어서 등·하교해야 했던 곳이 송산이었기 때문이다. 이 위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루에 3~4대 뿐인 버스를 타지 못하는 날이면 몇 시간을 걸어 집과 학교를 오갔다.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은 어린 학생에게는 고된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또 다른 ‘행복’이었다.

이 위원은 “전국적인 경제 침체가 장기간 지속됨에 따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전국에서 재정자립도가 상위권에 달하는 당진이 ‘시민이 살기 좋은 명품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송산 촌사람, 언론·방송인 꿈 이루다’

“시골 촌사람이 한국방송공사 KBS의 지방방송국 국장까지 보낼 수 있을지 꿈에도 몰랐죠. 전 아직도 꿈에 대해 뚜렷한 목표를 정확히 갖고 행동해 간다면 반드시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송산초등학교를 거쳐 호서중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는 막연하게 언론·방송인의 꿈을 키워왔다. 이후 호서고등학교에 진학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본격적으로 언론인의 꿈을 이루기로 결심했다. 호서고등학교에서 용인고등학교로 전학을 결정하고 다양한 문화와 지식, 정보 등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1985년 KBS에 입사해 보도본부 외신부에 들어가 ‘세계는 지금’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당시에는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했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시청자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여행자유화가 시작된 1990년대 초반 이후에도 해외 여러 나라의 정보를 제공하며 시청자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희열을 느낍니다.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몰라요.”


방송·언론 민주화 위해 활동

꿈으로만 꾸던 자신의 미래를 현실로 이뤄 낸 그에게도 역경의 시간은 있었다. 1990년 4월. KBS 서기원 사장의 취임을 반대하는 투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 위원 역시 그 중심에 서있었다. 사옥에서 반대 투쟁이 극심해지자 결국 경찰들이 진입해 이들을 연행하는 상황으로 번졌고 그는 결국 2개월 가량의 투쟁 끝에야 일선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위원장은 전국언론노동조합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당시 11명의 동료들이 해고를 당했고 이들의 복직을 위해 선전전을 총괄하기 시작했다.
“언론노조의 활동을 통해 방송과 언론을 이념과 정치의 장으로 이용하는 이들의 무지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속에서 언론인들이 피해를 입는 모습에 노조활동에 힘을 더하기로 결심했죠.”

이 위원은 곧바로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에 입학했고 석사과정을 마치는 등 언론인들 권리행사와 민주화를 위한 활동에 열의를 보였다. 그렇게 그는 노조활동을 이어오며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향 위한 거름 되고 파”

이 위원은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 중 하나로  KBS 충주방송국 국장으로 활동할 당시를 떠올렸다.
지역 시청자들에게 문화와 역사, 꿈을 전하며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방송 프로그램 이외에도 각종 좌담회, 음악회 등을 열어 지역민의 문화 충족을 위한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이제 그는 KBS 편성본부 위원으로 활동하며 추후 당진에 내려가 고향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지역에 거름이 될 수 있는 뜻 깊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고향 당진에서 많은 지인들과 함께하며 살아갈 그날을 기다려 봅니다.”

<편집자주> 서울을 가려면 차로 5~6시간을 가야했고 인천은 배를 타고 가야 했던 시절, 교육환경이 열악했던 고향을 떠나 타지로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다른 지역에 정착했지만 언제나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출향인들을 만나 지역에 소개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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