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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 13] 송산면 가곡1리
소금밭 너머 푸른 바닷물 넘실거린던 옛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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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방조제·현대제철로 하루아침에 변화
2-2공구 개발로 마을회관도 이전해야

‘아름다운 골(佳谷)’이라는 마을 이름의 흔적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마을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올 때면 준치, 숭어, 망둥이, 농어, 낙지, 바지락, 굴 등 셀 수 없이 많은 해산물이 잡혔던 황금어장은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다. 요즘처럼 꽃게가 제철을 맞았을 땐 너무 흔해서 버려버릴 정도였다. 어부의 만선의 꿈은 이제 정말 꿈처럼 사라졌다.

 

물고기 버글대던 황금어장

“물고기가 버글버글 했지. 특히 준치가 아주 잘 잡혔어. 강화도에서도 물고기를 잡으러 왔는데 하루에 적어도 70척, 많게는 90척의 배가 고기를 잡아갈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상상도 못해.”
가곡어촌계는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바다일을 생업으로 삼은 어부였으니 당진대표 어촌계로 손에 꼽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떠나며 어촌계는 근근이 이어져 가고 있다. 마을 근처에서는 김도 길렀다. 당시만 해도 완도 김보다 훨씬 더 맛과 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가곡리 인근 바다에는 대하를 기르던 양식장도 있었고, 염전도 200ha나 됐다. 마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염부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마을 뒷산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면 하얀 소금밭 뒤로 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렸다. 수증기가 가라앉아 만들어진 구름이 산 아래에서 바람을 타고 상여 나가는 모습을 했다가, 절이 됐다가, 때로는 용이 오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치웅 노인회 사무장은 “그 모습을 ‘섬 논다’고 했는데,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며 “사진 한 장 남겨두지 못한 게 못내 한이 된다”고 말했다.

“당연한 풍경이었으니까. 이렇게 한 순간에 사라질 줄 누가 알았겠어….”
석문 방조제를 막기 시작하면서 마을의 모습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바다가 뭍으로 변하고, 공장이 들어섰다. 지형이 변했고, 마을의 모습이 변했다. 그리고 사람들도 변했다. 풍요롭게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던 주민들은 거의 다 떠나고 다른 지역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그래도 고향이 좋으니까”

김한태 노인회장은 “옛날엔 밤에도 대문 닫고 사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지금은 인심도 흉흉해지고 (선주민과 이주민들이)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주민들은 원래 350가구 정도 살았는데 이제 70가구 밖에 되지 않는다. 마을을 떠난 주민들은 송산면내 다른 마을이나, 당진시내 쪽으로 이사했다. 종종 고향이 그리워 마을을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여전히 마을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이렇게 변했어도 고향이 좋으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이 개발되면서 평생 식구처럼 지내던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등돌린 이웃들도 생겨났다. 마을 주민들은 모두 생채기 난 가슴을 지니고 산다. 변해버리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 되돌리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혜택은 커녕 피해만 있을 뿐”

현대제철이 들어서면서 주민들은 8개월 동안 힘든 싸움을 이어가야만 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싸움이었다”며 “결국엔 진거야”라고 말하는 주민들에게 씁쓸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그렇게라도 했으니 야적장에 돔이 씌워지는 등 주민들의 요구가 일부라도 반영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지역개발로 우리가 마치 큰 보상이나 받고 어마어마한 혜택을 누리면서 사는 줄 알지. 매일 새벽 꽝꽝 대는 소리에 잠 못 드는 건 예사고, 흐린 날이면 이상한 약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는데다 쇳가루도 날리지… 어휴 못 산다 못살아. 혜택은 커녕 피해만 받고 있어.”
주민들은 “발전소 주변지역은 관련 법률이 있지만 제철소는 이에 해당되지 않아 마을로 돌아오는 혜택은 별로 없다”며 “개발지역이라 큰돈이라도 들어오는 줄 오해만 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가곡1리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위치한 지역은 송산제2일반산단 2공구에 편입돼 이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30년 넘게 한 자리에서 마을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던 장소인데, 내년 3월 쯤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한다.
“마음이 아프죠. 너무나 평온하게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주민들의 삶이 완전히 변해버렸거든요. 마을의 역사를 함께 겪은 마을회관인데 허물어야 한다니 아쉽네요.”(유호근 이장)                                           


[우리마을 주민대표] 끈끈하던 정… “옛날이 그리워”
“당진지역 발전을 위해 우리 마을 주민들이 희생한 거지요. 그동안 주민들의 반목과 갈등도 참 많았어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유호근 이장은 그동안 개발 때문에 겪은 마을 사람들의 고통에 가슴 아파했다. 현대제철 인근지역 환경대책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활동해 온 정치웅 사무장 역시 마을의 변화를 가장 안타까워했다.
정 사무장은 “면민 체육대회를 하면 단합상, 모범상은 다 우리마을이 휩쓸었을 정도로 마을 사람들 간의 정이 끈끈했다”며 “이젠 다 흐트러지고 반쪽 났다”고 말했다. 이들은 “더 이상 소음과 공해에 시달리면서 살고 싶지 않다”면서 마을의 옛 모습을 그리워 했다.

 

<편집자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당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다가 메워져 들판이 되고, 산이 깎인 자리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전통마을의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도 함께 변해간다. 이에 본지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을 통해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이 전통을 이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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