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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 17] 신평면 신당리
황금어장 변모해 이제는 황금들녘으로

삽교호방조제 막은 뒤 물 걱정 없이 농사
풍년 기원하던 세시풍속은 추억 속에
임아연l승인2013.10.24 20:54l(9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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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천을 사이에 두고 당진과 아산의 경계에 있는 신당리는 평지가 대부분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어 풍성한 어장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너른 들에서 생산되는 해나루쌀로 유명한 곳이 됐다.

 

   
약 400년 된 왕버들 나무로 마을의 보호수다.

“바지락과 대합 등 조개는 물론이고 게, 망둥어 등 여러 종류의 해산물이 잡혔죠. 갯벌과 바다, 그리고 민물이 만나는 황금어장이었어요.” (정경채 이장)

남원포와 인천을 오가는 배도 들락거렸다. 삽교천방조제를 쌓음으로 인해 예전만큼 많은 물고기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물 걱정 하나는 사라졌단다. 지금은 물이 항상 풍족하지만, 당시만 해도 물이 풍부한 마을은 아니었다.

 

“원래는 물이 풍족한 마을은 아녔지”

이전에는 마을에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담아 두던 큰 방죽이 있었다. 농번기 때는 벼를 심어 논으로 활용하고, 농한기가 되면 빗물을 저장해 두고 이듬해 농사를 위해 쓰곤 했다. 지하수도 넉넉지 않던 때라 농업용수는 물론이고 식수로도 썼다. 그만큼 물이 맑고 좋았다.
방죽에 저장해 놓은 물로 그 넓은 논에 물을 대기엔 역부족이어서 가뭄도 잦았다. 방죽 인근이 아니고서야 하늘에서 내려주는 빗물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천수답이 많았다.

마을 주민 이명희 씨는 “물 걱정 하나는 사라졌다”며 “방조제가 생긴 이후로 가뭄을 모르고 지낸다”고 말했다. 신당리는 이제 삽교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곳으로 농사짓기에 아주 편리해 졌다.

 

   
신당리 마을회관 옥상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만큼 풍년을 기원하는 여러 세시풍속도 전해내려 온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신당리에 포함된 여러 자연부락민끼리 쥐불놀이 경쟁을 하기도 했다. 쥐불놀이에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온 부락은 우쭐해 했고, 불깡통을 휘두르며 서로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한 아궁이에 불을 떼고 남은 재를 모아둔 잿간에 지푸라기를 모심듯 꽂아 놓고 풍년을 기원했다.

초가지붕에는 노래기침을 놓았다. 노래기침이란 소나무 가지를 잘라다가 초가지붕에 얹어 놓으면 지붕 속에 살던 노래기(노랭이라고도 부름.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벌레)가 사라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뾰족한 소나무잎이 노래기를 찌른다 해 ‘노래기침을 놓는다’고 표현했다.

 

여러 세시풍속이 전해지던 마을

음력 2월 초하루는 ‘머슴의 날’이라고 부르며 마을사람들이 한바탕 거나하게 즐기는 날이었다. 봄부터 농사일을 시작할 머슴이 필요했기 때문에, 날이 풀리기 시작하는 이날 푸짐하게 한 상 차려두고 머슴들을 대접했다. 든든히 먹고 힘내서, 열심히 한 해 동안 일하자는 뜻에서다. 이날은 사물놀이패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풍년을 기원해 주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 돌아가시면 ‘연방계’라는 것을 하기도 했다. 연방계는 지금의 상조회 또는 부조금의 개념인데, 상갓집에 쌀이나 음식, 물건을 가져가 3일 간 치르는 장례 보탬을 주는 것이다. 주민들은 상을 당한 이웃을 위해 출상할 때까지 이렇게 자신의 음식을 나누고, 일손을 거들었다.

 

천주교 신자들 모여 살던 ‘점말’

신당리에는 천주교 신자가 꽤 많았다.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받던 시절 점말이라 불리는 지역에 많은 교인들이 모여 살면서 옹기를 구워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지금도 당시에 사람들이 모여 미사를 드리던 공소가 점말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기도를 올릴 수 있는 소박한 곳이다. 신당리에는 부주물·정구실·개어덕·강개·원신당·앞곶 등의 자연부락으로 이뤄져 있다. 자연부락의 어원은 확실하게 알려진 바 없으나 개어덕은 갯가 언덕에 있다해 이름 붙었고, 앞곶은 마을 앞에 산부리가 나와 있어 앞곶이라 불렸다. 이밖에도 강개와 같은 부락이름은 마을 앞을 흐르던 삽교천과 물이 빠지면 드러났던 갯벌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120가구에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신당리는 대대로 한 자리에서 터를 닦고 살아온 토박이들이 대부분인 마을이다. 한 때 200가구도 훨씬 넘는 마을이었는데 가구수가 거의 반으로 줄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 도시로 갔다. 하지만 생명사랑 행복마을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은 춤과 운동을 배우며 건강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났죠. 어르신들이 많고 젊은 이가 없어서 일손이 부족해요. 다행히 지금은 농사일이 기계화가 이뤄져 편리한 편이지요.” (정경채 이장)


[우리마을 주민대표] 송전선로 관통… “큰 걱정”

 

   
(왼쪽부터) 김수남 부녀회장, 주민 이명희 씨, 정경채 이장

정경채 이장 : 지난해에는 농지에 계사를 건축한다 해서 주민들이 막아내느라 고생이 많았어요. 올해에는 송전선로가 마을을 관통해 지나간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네요. 한국전력의 계획대로 라면 마을의 일부 지역만 지중화가 이뤄진다고 하는데 송전선로가 지나면 주민들의 재산피해는 물론이고 건강문제까지 무척 염려스럽죠.

김수남 부녀회장 : 마을일에 솔선하는 이장님은 마을 현안마다 발 벗고 나서세요. 더구나 마을주민들은 언제든 화합하고 있어 큰 힘이 되지요. 저도 부녀회장으로서 일할 맛이 납니다.

주민 이명희 씨 : 송전선로가 지나거나 공업화할수록 점점 사람 살기 힘든 지역이 될 거에요. 어르신들이 많다보니 주민들이 건강하게 지내시는 게 가장 큰 바람이죠.

<편집자주>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는 지금의 당진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바다가 메워져 들판이 되고, 산이 깎인 자리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렇게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만큼 전통마을의 모습은 물론 사람들의 문화와 가치관도 함께 변해간다. 이에 본지는 ‘우리마을 이야기’라는 기획을 통해 마을의 모습과 사람들이 전통을 이으며 살아온 이야기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


임아연  zelkova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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