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실시간뉴스
편집 : 2024-03-28 10:44 (목)

본문영역

그 때 그 사람 | “불편한 몸이지만 열심히 살아야죠”
식물인간에서 기적처럼 걷게 된 ‘구두닦기’ 허성무 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두방 접고 호서고·계성초 다니며 구두 닦아

늠름한 청년으로 살았던 날보다 이제 장애인으로 살아온 날이 더 많아졌다.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스물 두 살의 청년이 어느덧 쉰 살의 아저씨가 됐다.

허성무 씨는 식물인간으로 5년을 살았다. 기적처럼 그가 눈을 떴을 때 살아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을 만큼 머리에 인 하늘이 너무나 무거웠다. 목발 없인 걷지 못했고, 말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선 모든 근육을 힘겹게 움직여야 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딛고 일어나 교통안내, 행정도우미, 그리고 구두닦기를 시작했다. 그는 온 몸으로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고 말해 왔다.

지난 2000년 당진시대에 첫 보도된 허성무 씨는 푸른 제복을 입고 주정차 단속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호전된 상태였다. 2년 뒤엔 당진성당 근처에 자그마한 구두수선방을 차린 어엿한 사장님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다시 만난 그는 얼굴에 주름이 더 늘었고 마음엔 걱정이 늘었다. 

허 씨를 찾기 위해 당진성당 근처를 샅샅이 살폈지만 그의 구두수선방 ‘허구두쇠’를 찾을 길이 없었다. 지인들을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연락이 닿은 그는 여전히 구두를 닦고 있었지만 제 둥지 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3년 전 쯤 구두방을 닫았어요. 당진읍사무소에서 행정도우미를 하면서 구두방을 정리했는데, 실과장 인사이동이 이뤄지면서 제가 일할 자리가 없어졌어요.”

안정적인 일자리를 잃은 그는 요즘 세 가지 일을 한다. 매일 아침 계성초 앞에서 교통안내를 하는 한편, 당진시종합복지타운에서 일주일에 세 번 청소를 하면서 월 25만 원 남짓의 돈을 번다. 일을 하지 않는 날엔 호서고와 계성초 교사들의 구두를 닦으러 학교에 간다. 예전엔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구두를 닦았지만 지금 그에게 신발을 맡기는 사람은 호서고에 2명, 계성초에 10명 정도 뿐이다. 한 달에 7번 구두를 닦으면 한 사람 당 2만 원을 받는다.

걱정인 건 다가오는 겨울이다. 칼바람을 막아줄 작은 공간조차 더 이상 없다. 다리에 힘이 없어 오토바이로 이동하다 넘어지기도 부지기수. 붉게 상처 난 손을 내보이며 그는 “어제도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졌다”고 말했다. 눈이라도 오는 날엔 아예 발이 묶여 버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성무 씨는 일을 해야만 한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도와주나요? 계속 얼굴 비치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한 사람이라도 더 제게 구두를 맡기겠죠.”

어려운 여건이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주위의 도움으로 운동도 계속하고 있다. 읍내동 월드헬스 김용열 관장은 그에게 특별히 ‘평생 무료’를 선언했다. 미안한 마음에 허 씨가 헬스장 이용비를 내려하자 김 관장은 “장애인이 헬스장에 다니면 사람들이 꺼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 씨를) 받아 줬다는 건 돈 때문이 아니다”라며 단박에 거절했다고 한다. 허성무 씨는 20년 동안 넘은 낮은 문턱을 오늘도 힘겹게 건너야 하지만 그래도 그에게 삶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가진 게 없어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보답할 방법이 없네요. 잘난 것 없는 저를 이렇게 찾아줘서 참 고맙습니다.”

저작권자 © 당진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5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