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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사람 | “자전거 못 타 심심하지 뭐”
100살까지 자전거 타고 마실 다니던 이시용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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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함께한 자전거 이제는 뽀얀 먼지만


낡은 자전거에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손잡이와 바퀴에는 거미줄이 끼어 할아버지가 꽤 오래전부터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지난 2010년 당진시대가 이시용(102)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만 해도 할아버지는 백수(白壽)의 나이에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다녔다. 13살부터 탔으니 무려 86년 동안 자전거는 할아버지의 발이 돼왔다.
본지의 보도 이후 할아버지의 사연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행정기관에서 할아버지에게 자전거를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100세를 지나면서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더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자전거는 이제 창고에서 매일매일 녹슬어 가고 있다. 그리고 언제 다시 창고 밖으로 나와 바퀴를 굴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리도 아프고, 이제 자전거 못 타. 저거 정부에서 받은 거여. 얼마 못 탄 새 것인디 가져다가 타.”
몇 년 새 할아버지는 많이 늙으셨다. 귀도 잘 들리지 않아 한 마디의 질문을 하기 위해선 귀 옆에 바짝 다가가 목청껏 말해야 했다. 이제 TV소리도 들을 수 없어서 할아버지는 방안에 가만히 누워있거나 햇볕을 쬐러 마당에 잠시 나와 앉아 있는 게 일상의 전부다.

이시용 할아버지는 “경로당도 이제 가기 싫다”면서 “가봤자 다 20-30년 씩 어린 사람들인데 다들 끼리끼리 놀지 나같은 늙은이를 좋아하겠느냐”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그래서 더 쓸쓸하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아들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 누구에게보다 길기만한 하루, 할아버지에게 삶은 이제 조금 지루해졌다.
자전거를 보여 달라는 말에 할아버지는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긴 세월을 말해주듯 낡은 자전거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고 할아버지는 천천히 자전거를 끌어 내렸다.

“이제 (자전거 타고 싶은) 마음도 없어. 그만 타고 싶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멋진 중절모를 쓴 채 푸르른 시골길을 달리던 할아버지 인생은 이제 한 페이지의 짧은 기록으로 남았다. 할아버지는 자전거와 함께한 추억을 되뇌며 생의 ‘마지막 잎새’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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