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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당진민들레대안센터 상담실장]
안녕하냐는 그 물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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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한 대학생이 물었다.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대통령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한 말 한마디 죄로 제명이 운운되고,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 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 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고 그는 묻는다.

 

오래 전에 이미 난 질문을 잊었다. 내가 정말 제대로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이 옳은 삶인지, 정의로운 삶이란 과연 가능한지 이딴 질문들은 하루하루의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하자 곧 사치한 것이 되고 말았다. 젊었을 때는 행복하게 사는데 가난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거라 확신했고, 돈 보다 더 근본적이고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며 살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고 평가되는 세상에서 없는 자로서 당당한 삶을 살기란 여간해선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퍼드덕 거려도 날개를 펴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고 어느덧 내가 한 때 세상적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한번이라도 하늘 높이 날고자 했던 꿈을 꾼 적이 있었는지도 희미해졌다. 날아본 적이 없는 날개는 퇴화돼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비상飛上은 애초부터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고통스런 사실에 전율하며 절망했다. 진짜 어쩌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허나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이 얼마나 경멸받고 모욕당하는지 목도해야했고, 가진 자의 기득권이 얼마나 공고한 것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난 가진 것 없고 능력 없는 자로서의 내 고단한 삶만을 연민하며, 안타까워하고 절망해 왔다. 이렇게 지속된 자조적인 체념과 좌절은 어떻게든 한 번 나를 넘어서보려는 작은 기도企圖조차 무수히 비웃으며 쪼그라들고 무력한 중년의 초상을 내게 만들어 주었다. 지치고 무뎌지고 굳어져 버리고 만사가 귀찮아진 난 벌써부터 나약해 빠진 중년이었다.

 

그런데 한 청년이 묻는다. ‘그저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가 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 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가,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라고 말이다. 이 청년이 던진 질문은 이 사회가 불법과 부정이 판을 치는 사회로 또 다시 회귀했던지 말던지 내 삶에만 아파하고 내 가족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눈앞의 보잘 것 없는 돈벌이에만 온 정신을 쏟고 있는 나의 오랜 일상에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였다. 그것은 단지 이익에만 침을 질질 흘리도록 조건반사화된 의식과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끼는 것에 비례해서 두터워져 갔던 양심에 떨리는 파장을 일으키고, 내 하나의 생활이 버거워서 밖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는 건 사실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라고 꾸짖는다. 그리고 비겁의 뒤에 숨어있지 말고 나오라고 손짓한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지는 못하리라. 오늘도 해야 할 비루한 밥벌이가 있고 너무나 오랫동안 학습된 무기력이 압도하고 있는데다가 더구나 나는 작고 초라하고 힘없는 아줌마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는 다시 깨어있는 시민이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 비겁한 양심에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맹목적이길 거부하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머뭇거려야 하고, 불법을 불법이라 말하는 것에 용기를 내야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시민이 되기를 바라려면 불이익을 감수해야하며, 사람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양심을 따르는 것이 종북이 되는 사회에서 그리하여 종북이 만연한 이 땅에서 우리는 진정 안녕한 걸까? 아니, 안녕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아니, 안녕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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