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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보다…내 자식 같잖아”
세월호 파견된 특수임무유공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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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라인 설치·시신 인양 도와
“비통한 현장…뉴스 보며 아직도 눈물”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당진지회 회원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진도 해상에 나가 가이드라인을 설치하고 시신 인양을 돕는 활동을 펼쳤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6일부터 일주일 동안 이들은 내 자식 같은 안타까운 마음에 두렵고 힘든 줄도 모르고 현장에서 작업을 도왔다.

50대 아저씨의 두 뺨이 파르르 떨렸다. TV에서 나오는 소식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려 차라리 말을 삼키던 그는 ‘그 또래’ 고등학생 딸과 아들을 둔 아버지였다.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충남지부 당진지회(이하 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들이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6일부터 23일까지 진도 해상에서 구조작업 등을 펼치고 돌아왔다. UDU(해군첩보부대), HID(북파공작원) 등 국가의 특수임무를 수행한 뒤 전역한 사람들의 모임인 특수임무유공자회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마자 진도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권준식·고종영·김재범 씨를 비롯해 당진지역에서는 7명의 회원들이 참여했다.

다이빙, CPR(심폐소생술) 자격증 등을 갖추고 특수 재난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구조 훈련을 받은 이들은 세월호 선체에 가이드라인을 설치하는 등 활동을 펼쳤다. 침몰 직후 이외엔 추가 구조자가 한 명도 없었듯, 당진에서 진도까지 달려간 이들은 안타깝게도 단 한 명의 인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당진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산 사람들을 구조하러 간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진도에 도착하니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고 비통한 현장이었죠. 다녀와서 2~3일 간은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너무나 충격이 컸어요.”(권준식 씨)

진도 팽목항에서 약 1시간20분 가량 배를 타고 나가자 뒤집힌 세월호의 선수(船首)가 보였다. 장비를 갖추고 바다로 뛰어 드니 물속에서 가시거리는 고작 10cm 정도였다. 조류는 세고 마음은 다급했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세월호 선미(船尾)까지 32m의 가이드라인을 최초로 설치하는데 성공했다. 다이버들은 이들이 설치한 가이드라인을 따라 선미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진도에 머물면서 회원들은 시신 인양을 도왔다. 대부분은 학생들이었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A씨는 “시신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식 같은 마음이 커 마음이 아팠다”며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감정을 다스릴 수 없어 TV도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젊은 시절 북파를 위해 고된 훈련을 받으며 강인하게 살아왔다. 저수지에 사람이 빠졌을 때, 그 주검을 수습하기도 했고 지난 천안함 사고에도 파견되는 등 별별 일을 다 겪어 온 이들이었지만, 이번 일은 특히나 감당키 어려운 듯 했다.

“한 번도 가족들에게 사랑한다 말 해본 적이 없었지. 그런 말은 모르고 살아왔어….”
학생들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자식들이 생각났다. 비통한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온 그들은 안타까운 심정을 토해냈다.

권준식 씨는 “사건 발생 초기에 초동 구조에 실패하지만 않았어도 현재 생존자의 두 배는 더 살릴 수 있었다”며 “안일한 대처가 사고를 키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B씨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등 국가의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마다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면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특별한 지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국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자진해서 출동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에요. 지금 이 시간에도 봉사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힘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나라를 위해 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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