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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와 표준어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당진시대l승인2014.06.28 10:08l(10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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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입학한 신입생과 상담하면서 미안하고 씁쓸한 생각을 감출 수 없던 적이 있다. 그는 경상도 사투리가 강한 부산 출신 여학생이었다. 어린 나이에 목표도 분명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는 의지도 강해서, 졸업 후 어디 가서 무엇을 해도 잘 할 수 있을 유망한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필자가 씁쓸해 한 것은 그 학생이 장차 서울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겪어야 할 소외와 좌절 때문이었다. 역대 대통령의 대다수가 경상도 혹은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했지만, 그리고 차기 대통령으로 물망에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표준어에 익숙하지 못한 지방 출신들이지만, 한국 사회에 사투리는 여전히 차별과, 배제와 조롱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국가체제를 유지하려면 표준화된 국어 체계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 국가 내에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각 지방마다 고유의 사투리가 존재한다. 그래서 대다수 국가들이 표준어를 정하고, 유년기부터 학교 교육을 통해 표준어를 습득하도록 한다. 그런데 표준어는 대부분 그 나라의 수도에서 통용되는 말로, 프랑스는 파리, 영국은 런던, 러시아는 모스크바, 일본은 도쿄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반면 독일의 경우, 북부 지역의 방언이 표준발음이고, 미국의 경우 표준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국가에서는 표준어와 사투리가 수평적으로 공존하지 않는다. 말투에 따라 우열 혹은 위계가 생기고, 그로 인해 사투리 사용자들이 제도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차별받는다. 특히 표준어가 수도와 중심 지역의 언어일 경우, 지방 거주자들은 태생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된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언어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장애요인이 된다. 정치·경제·문화가 서울에 집중돼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하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한국의 표준말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규정돼 있다. 여기에는 표준어는 품위 있고 순화된 말이고,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한국의 표준어는 일제강점기에 구축된 식민지배의 유산이다. 조선총독부는 1912년 경성어를 표준어로 정했다. 효율적인 식민 지배를 위해서는 조선인의 언어를 우선 통일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33년 발표한 조선어학회의 표준말 기준도 총독부의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고,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을 표준말로 정했다. 물론 당시 조선어학회의 의도는 일제의 의도와는 크게 달랐다. 조선어학회는 조선시대 지배층에게서 외면 받고, 일제에 의해 말살 위협에 처한 민족의 언어를 보존하기 위해서 표준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 표준어의 기준으로 정한 ‘중류사회’나 ‘서울말’의 정의나 범위 등이 불명확했지만, 해방 이후에도 표준어의 정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편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에는 국어나 표준어 대신 공통어라는 개념이 확산됐다. 1990년대부터는 사투리도 공통어와 함께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러나 그들의 과거 식민지에선 여전히 사투리가 차별과 배제의 기준이 되고 있다.

사투리와 표준말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자공존’해야 하는 언어다. 표준어가 국가체제를 위해 필요하다면, 사투리는 개인과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사투리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배워 온 말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가장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소통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투리는 또한 지역 정체성의 표현수단이다. 자기가 가장 편하게 사용하는 말, 자기 고향의 말을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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